팔도강산 한 바퀴

낙동강 물길을 따라 전통의 향기를 걷다

전통의 숨결 속으로 가을을 거닐다
경북 안동

고요한 물길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오래된 전통이 속삭이듯 다가온다. 안동의 가을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회마을의 백사장과 병산서원의 은은한 단풍, 월영교의 물안개까지. 이곳에서 우리는 계절과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시간을 만난다.

글. 차은서 사진. 남윤중(studio51)

하회마을, 물길과 전통이 만나는 산책

아직 여름의 더위가 머물러있는 9월. 길어진 여름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뒤로한 채, 조금 늦은 휴가라는 생각으로 경북 안동으로 향한다. 안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회마을은 물이 마을을 감싸안듯 흐르는 낙동강 덕분에 ‘하회(河回)’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 문화를 간직한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현재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초가와 기와가 어우러진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고요한 시간의 결을 따라 이어지는 다양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을 중심에는 조선 후기의 내림제 가옥인 충효당과 양진당이 자리하고 있다. 두 집 모두 풍산 류씨 가문의 유서 깊은 종택으로, 하회마을의 전통과 정신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격식을 갖춘 구조와 너른 마당은 선비의 절제된 삶을 상상하게 한다.

마을 끝자락, 하회마을 선착장에 다다르면 낙동강의 물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부용대 아래로 향하는 것도 좋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강변을 따라 난 백사장, 그리고 부용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을 전경은 하회라는 이름이 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부용대를 오르지 않고 마을 안쪽을 걷다 보면 삼신당과 만송정 숲도 만날 수 있다. 삼신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신당으로, 오랜 시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온 공간이다. 그 곁의 만송정은 ‘만 그루의 소나무’라는 이름처럼 울창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마치 고요한 시간의 숲을 지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책로다. 마을을 지나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은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바람이 느긋하게 불어오고, 강변 풀잎들이 가볍게 흔들릴 때면 세상의 소음은 저만치 멀어지는 듯하다. 걷다 보면 어느새 병산서원의 정갈한 풍경이 눈앞에 다가온다. 이 길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아름다운 산책길로, 여행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풍경을 선사한다.

하회마을
  • 경북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8(하회리 840번지 일대)
  • 하회마을 주차장(도보 이동 가능, 셔틀버스 운행)

병산서원, 유교 정신을 품은 풍경

낙동강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고개를 내민다. 깊어가는 가을의 공기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병산서원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풍경화처럼 고요하고 단정하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와 유유히 흐르는 강, 조용한 마당이 어우러져 단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대학자 류성룡(1542~1607)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원래는 풍산 현곡에 있던 풍악서당이 그 시초였으나, 162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며 병산서원으로 개편됐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와 흐르는 낙동강, 마당의 고요한 돌담과 소박한 기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공간 전체에 선비정신이 배어 있다.

특히 서원의 중심에 자리한 만대루는 병산서원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넓은 마루에 앉아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문을 논하던 옛 선비들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사방이 탁 트인 이 누각에서는 강바람이 그대로 마루를 스치고, 잔잔한 수면 위로 비치는 하늘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든다.

서원 인근에는 짧은 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여행객들은 자연과 함께 역사적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 길을 따라 나무 데크 위를 걷다 보면 작은 정자나 쉼터가 있어 잠시 머무르기도 좋다. 바쁜 일상 속 이곳에 잠시 앉아 하루의 무게를 가볍게 흘려보내는 것도 좋겠다.

병산서원
  •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 병산서원 주차장(입구에서 도보 이동)

월영교, 사랑의 기억을 잇는 다리

안동 시내 상아동과 성곡동을 잇는 월영교는 국내 최장 목책 인도교다. 길게 뻗은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아침과 저녁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가을철에는 해가 기울며 퍼지는 노을빛과 조명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월영교 중간에는 전통 정자인 월영정이 설치돼 있어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추고 휴식할 수 있다. 다리 양옆으로는 수변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억새와 바람, 반짝이는 수면이 어우러진 풍경을 천천히 즐기기에 좋다.

하지만 월영교가 진짜 전하고자 한 건, 그 풍경 너머의 사연이다. 이 다리는 조형적 아름다움에만 그치지 않고, 이곳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지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런 사랑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월영교는 미투리 형상을 본뜬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사랑을 닮은 다리 위를 걷다 보면, 계절과 시간, 그리고 기억까지도 잇는 월영교의 진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최근 안동을 포함한 경북 지역은 산불 피해를 입어 소중한 일상을 빼앗긴 바 있다. 이럴 때일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올가을 휴식과 함께 지역에 힘을 보태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월영교
  • 경북 안동시 상아동, 성곡동 일원
  • 월영교 주차장(안동댐 인근, 도보 연결)
모범운전자연합회 안동지회 임재화 지회장 추천 식당
느티나무

넉넉하고 정갈한 한상정식이 대표메뉴로, 신선한 해물과 다양한 반찬이 푸짐한 것이 특징. 해물백숙 등 건강식 위주의 한상차림과, 사장님의 친절한 서비스가 기억에 남는 곳.

  • 경북 안동시 앙실로 63 느티나무해물백숙집
  • 054-857-3338
소문

깊고 진한 국물의 갈비탕이 대표메뉴로, 엄선한 갈비와 각종 재료를 푹 고아내어 깔끔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변함없이 푸짐한 고명과 균형 잡힌 간, 오랜 전통에서 오는 정성스러운 맛이 꾸준한 인기를 끄는 비결.

  • 경북 안동시 광명로 39
  • 054-857-5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