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딜레마존’에서의 오판

황색 신호에 멈출 것인가, 통과할 것인가. 운전자가 찰나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이른바 ‘딜레마존’에서 발생한 교차로 사고가 법정에서 논의됐다. 신호위반 여부가 형사처벌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이번 사건은, 일상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법의 기준으로 되짚는다. 판결을 통해 ‘딜레마존’에서의 안전운전과 운전자의 주의 의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글·그림. 차은서 감수. 천주현(형사 전문 변호사)

천주현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형사법 박사, 대구고등검찰청·대구경북경찰청 수사위원
(제19회 우수변호사상 수상, 제61회 법의 날 표창 수상)

딜레마의 순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정옥은 토요일 아침,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햇살을 느끼며 운전대를 잡았다. 교통량은 적었고, 길도 한가로웠다.
익숙한 길을 따라 교차로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신호등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페달 위의 발에 힘을 풀었다가
다시 망설였다.
“멈출까? 그냥 지나갈까?”
잠깐의 고민 속에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뒷거울을 보니 뒤에 따라오는
차량의 거리가 너무 짧았다. 급정거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단속카메라의 붉은 불빛과 교통사고의 위험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런 게 바로 그 딜레마존인가···”
가슴이 쿵쾅거리며,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미끄러워졌다. 결국 정옥은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고, 차량은 교차로 안으로 진입했다. 정옥은 순간적으로
오른쪽 시야에 자동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어?!”
짧은 외침과 동시에 자동차 두 대는 충돌했고, 정옥의 차는 크게 흔들리며
멈췄다. 정옥은 순간적으로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얼어붙었다.
순식간에 사고 현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미 빨갛게 바뀌어 버린
신호등 앞에서 정옥은 아픔을 참으며 나오는 피해자 미래를 바라보았다.
정옥의 눈에는 깊은 죄책감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가해자가 된 정옥

“아침부터 진짜!”
날카로운 미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보세요! 지금 빨간 불이잖아요. 교차로에서 신호도 안 보고 가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노란 불로 바뀌었는데 멈출 수가 없었어요. 괜찮으세요?”
“괜찮아 보여요? 일단 보험사 부르고 신고부터 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와 보험사 차량이 도착했다. 사고를 수습하며 경위를
설명하다보니 정옥은 어느새 가해자가 돼 있었다. 일반 교통사고가 아니라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아무리 종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가 신호위반을 한 건 아니잖아요···”
정옥은 항변했지만 미래는 ‘법의 판단에 맡기자’라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1심 판결의 날이 다가왔다. 판사는 사건의 모든 정황을 꼼꼼히
살피며 신중히 판결을 내렸다.
“당시 교차로에는 정지선과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아,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상 반드시 정지할 의무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황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한 것을 신호위반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정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2심 항소심도 역시 무죄를 내렸지만,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의 생각은 달랐다.
“원심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6조제2항 [별표2]의
‘황색의 등화’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상고했고,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갔다.
논쟁의 초점은 정지선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교차로에서도
황색 신호에 반드시 정지할 의무가 있느냐로 좁혀졌다.
법정 싸움이 길어질수록 정옥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망설임의 대가

대법원의 공기는 더 차갑고 무거웠다. 정옥은 다시금 피고인석에 앉았다.
판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사건의 핵심 쟁점을 언급했다.
“본 사건의 핵심은 정지선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교차로에서
황색 신호에 운전자의 정지 의무가 있느냐입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교차로
직전에서 반드시 정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에 ‘황색의 등화’로 바뀐 경우에는 차량은 정지선이나 ‘교차로의 직전’에
정지하여야 하며, 차량의 운전자가 정지할 것인지 또는 진행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정지선과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황색 등화를 보고도
교차로 직전에 정지하지 않았다면 신호를 위반한 것이라 봄이 타당합니다.”
눈앞이 아찔해진 정옥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판사님, 정말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어요. 뒤차가 너무 가깝게 따라붙어서··· 제가 멈췄다면 사고가 날 것 같았습니다.”
판사는 그의 사정을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냉정한 법의 논리로 되돌아갔다.
“피고인의 입장과 당시 상황의 난처함을 재판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딜레마존이라 하여
신호위반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호 체계는 모든 운전자가 지켜야 할 기본 규범입니다.”

판사는 판결문을 들며 말을 이어갔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판결합니다.”
정옥의 시야가 흐려졌다. 무거운 현실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법정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혼란과 후회가 가득했다.
이대로 원심에 사건이 돌아가면 사실관계 변동이 없는 한 정옥은 처벌될 수밖에 없었다.
순간의 망설임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대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차를 세웠더라면···.”

위 사건은 교차로 진입 전 정지선과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이 황색 등화를 보고서도 교차로 직전에 정지하지 않았다면 신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한 사례를 각색한 내용입니다.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8도14262 판결 2018도14262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도로교통법위반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