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가짜 교통사고의 최후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사고가 난 척 속여 금품을 갈취하는 사기단의 사례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런 사기단은 어떻게 처벌될까? 실제 판례를 통해 살펴보며 운전 중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지 생각해 보자.

글·그림. 차은서 감수. 천주현(형사 전문 변호사)

천주현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형사법 박사, 대구고등검찰청·대구경북경찰청 수사위원
(제19회 우수변호사상 수상, 제61회 법의 날 표창 수상)

보험은 됐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골목길,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차를 발견하자 도훈(가명)은 주변을 살피며 자동차와 가까워졌다.
그의 목표물은 차 조수석 쪽 옆거울.
그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아야!”
도훈의 비명에 깜짝 놀란 운전자 정연(가명)이 차를 세웠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정연은 얼른 차에서 내려 도훈의 상태를 살폈다.
“어머, 부딪히신 거예요? 괜찮으세요?” “이 여자가 사람을 치고 괜찮냐니! 괜찮아 보여요? 어딜 보고 다니는 거야!”
“아이코, 죄송합니다. 보험 접수해드릴게요!”
그때, 도훈이 정연을 막았다.
“아니, 뭐 보험까지 불러서 일 크게 키울 건 없고. 내가 좀 바빠요. 적당히 치료비만 받고 끝냅시다.”
“네? 아니 그래도···.” 정연히 머뭇거리자, 도훈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일단 병원 가볼 거니까 10만 원만 주고 가요.
정연은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도훈에게 그 자리에서 10만 원을 건넸다.

다음날, 도훈은 정연에게 연락했다.
“아니 병원에 가니까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하다네? 이만저만해서 돈을 좀 더 줘야겠어.”
정연은 보험 처리가 더 나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도훈의 기에 눌려 그가 말하는 금액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빨리 마무리하고 더 이상 엮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도훈의 횡포는 3개월간 이어졌다. 도훈은 이후에도 정연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고 그 사이 180만 원을 챙겼다.
“하하, 이래서 참 편하다니까. 전화만 하면 바로 보내주고 지갑이 따로 없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날도 어김없이 도훈은 도로 주변을 서성였다. 그때 도훈의 시야에 들어온
고급 차 한 대. 도훈의 눈이 반짝였다.
“비싼 차네? 돈도 좀 있어 보이는데 용돈벌이 좀 할까?”
도훈은 평소와 같은 수법으로 자동차에 다가갔다.
“아이고 내 손목!”
하지만 운전 중이던 미진의 반응은 정연과 달랐다.
“뭐예요?”
“뭐냐고? 이 사람이 사람을 쳐놓고 그냥 가? 인생 그런 식으로 살지 마라!
아이고 나 죽네~”
도훈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주변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미진은 흠칫 놀라 도훈에게 다가갔다.
“괜히 일 키우지 말고 병원비만 주고 끝냅시다. 연락처 주시고요.”
“네, 이게 선생님 번호 맞으시죠? 근데···. 제 차에 부딪히신 거 맞아요? 저는 전혀 못 느꼈거든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보험 처리할게요.”
“아이 진짜, 재수 없게!”
도훈은 한 마디를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괜히 연락처만 줬다 싶어 찝찝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도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임도훈 씨? 여기 경찰서입니다. 사건이 접수돼서 피의자로 출석해 주셔야 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무슨 피의자라는 겁니까?”
“사기, 공갈 사건입니다. 출석하시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타당한 결과

마냥 피할 수는 없었던 도훈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경찰서를 찾았다.
이미 사기 전과가 있기 때문에 도훈은 빨리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최근에 고의로 교통사고 내고 사람들한테 금품을 갈취한 사실 인정하십니까?”
“아니, 그게···. 정말 죄송합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그랬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건은 빠르게 검찰로 송치돼 어느덧 판결일이 다가왔다.
도훈이 할 수 있는 일은 판결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저 형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시작하자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였다.
“피고인은 거짓으로 교통사고를 위장하거나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운전 중이던
피해자에게 접근해 수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공갈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미수에 그친 사실이 인정된다.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은 인정되나, 이미 사기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이 사건과 유사한 내용의 사기죄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고 집행을 종료해
누범기간에 있으면서 또다시 범행을 저질러 비난 가능성이 크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
각 범행은 피고인이 불특정 다수, 여성 운전자만을 상대로 고의로 차량 옆거울에 오른손을
부딪힌 후 피해금이나 합의금 명목으로 현금을 갈취 내지 편취하거나
미수에 그친 계획적 범행으로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이 중하다.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하였고 피해 변제나 회복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

드디어 판사가 판사봉을 손에 쥐었다.
“판결. 피고인은 피해자 유정연에게 저지른 공갈이 인정되므로 징역 2개월에,
나머지 각 죄에 대해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처한다.
또한 피고인은 배상 신청인들에게 갈취금 및 편취금을 각 지급하라.

탕탕탕 -

“안 돼, 또다시 징역이라니!”
도훈의 뒤늦은 후회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위 사건은 고의 사고 후 합의금 갈취하는 사기단의 사건 판례를 각색한 내용입니다.

울산지방법원 2024. 8. 13. 선고 2024고단1313, 2260(병합) 판결 [공갈, 공갈미수, 사기, 사기미수]

주문

피고인을 판시 2024고단2260 사건 범죄일람표 (I) 기재 순번 1, 2의 죄에 대하여 징역 2월에, 나머지 각 죄에 대하여 징역 1년 6월에 각 처한다. 피고인은 배상신청인 D에게 갈취금 50만 원, 배상신청인 B에게 편취금 50만 원, 배상신청인 C에게 편취금 40만 원, 배상신청인 E에게 편취금 20만 원을 각 지급하라. 위 각 배상명령은 가집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