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10 Vol.83
돌아보길 돌아보길

돌아가거나
돌아서거나

글. 차은서

완벽주의에 대한 고찰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다. 잘못됐다고 느낀 모든 것이 나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도저히 꼬인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심리상담소를 찾은 적이 있다. 글자가 빼곡한 심리 검사지를 앞에 두고 나는 거침없이 ‘답’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객관식 문제를 보니 학창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학창시절 나는 모든 게 아깝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정해 준 시간대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버려지는 나의 시간이 특히 그랬다. 예컨대 답안지를 모두 적은 뒤 시험 종료까지 남겨진 10분이 억울하리만큼 답답했다.
그렇게 지난날을 회상할 때쯤 상담사가 결과 분석지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완벽주의 성향이 높네요?”
내가 완벽주의였던가? 조금 의아해 하는 나를 보며 상담사는 말을 이어갔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하는 건 좋은 점이죠. 그런데 이게 심해지면 뭐든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자신의 성향을 알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처할 수도 있죠. 보통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끼세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모든 사람이 내 뜻대로 안되면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나만 그래?’
‘그럼 잘못된 상황을 그냥 두고 있어야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건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내뱉으며 답을 구하는 나에게 상담사의 말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잘못된 상황이라는 건 누가 정한 거죠?”

급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

아차 싶었다.
나에겐 바로잡고 싶었을 상황이 누군가에겐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잣대가 어쩌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누구나 조금씩 그래요. 요즘 세상은 사람들한테 요구하는 게 너무 많잖아요. 인정받아야 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죠.”

상담사의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퇴근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여전히 답답했고, 내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좌절했다. 업무 마감시간이 다 됐는데도 맡은 일을 마치지 못하면 불안감에 시달리며 허둥거렸다.

그때마다 상담사의 말을 되새겼다.
‘후, 생각해 보자.’
출퇴근길 교통체증으로 답답한 건 회사에 늦어 인사고과에서 안 좋은 점수를 받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길이 막히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라 실제론 내가 조금 더 일찍 나왔으면 될 일이었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변수를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무능력감이 나를 괴롭혔지만, 지나고 나면 또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인은 누구나 조바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도태될까 불안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치열하다. 조금만 벗어나면 예민하게 얼굴을 붉히고 흥분하기도 한다. 증상의 경중은 다를 수 있어도 누구나 약간의 완벽주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걸 바꿔 생각하면 조바심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됐다는 사실에 설레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뿌듯해질 수 있다. 긍정적인 미래를 떠올리며 가슴 졸이고 조금은 흥분할 수도 있다.

조금 늦어도 도망가지 않아

시선을 조금만 달리했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퇴근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떠올리면 1분, 1초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도저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자동차들을 원망 섞인 눈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아, 내가 빨리 가족들이랑 쉬고 싶은가 보다.’
‘빨리’가 아니라 ‘가족들’에 방점을 찍으니 기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음이 달라지니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겨 생겨나는 불안감에서 등 돌리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교통체증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 조금 늦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은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고
방향을 알게 된 뒤에야 차분해질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평안해질 수 있다.
평안해진 뒤에야 깊게 사고할 수 있고
깊게 사고한 뒤에야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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