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차가 들썩 오르내리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입니다. 과속방지턱은 차량의 주행 속도를 강제로 낮추기 위해 바닥에 설치한 턱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차량 속도를 시간당 30km 이하로 낮춰야 하는 곳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합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주택가 등이 이곳에 해당됩니다. 오늘은 새로운 과속방지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 이혜림(과학전문 기자)
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과속방지턱은 보행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시설물입니다. 그러나 저속으로 달릴 때도 운전자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종종 차량 아랫부분이 긁히는 등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팀은 독특한 재료로 과속방지턱을 만들었습니다.
연구팀이 과속방지턱 재료로 사용한 것은 바로 옥수수전분과 물입니다. 전분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식물을 잘게 갈아 물에 담그면 아래 가라앉는 가루를 말합니다. 음식을 만들 때는 걸쭉한 질감을 내기 위해 전분을 넣곤 합니다. 이런 전분을 물에 넣으면 전분이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액체와 고체의 특성을 모두 가진 독특한 물질이 됩니다.
전분을 섞은 물은 약한 충격에는 액체처럼 흐르고, 강한 충격에는 순간적으로 고체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분물에 지그시 손을 넣으면 전분 사이로 손가락이 쑤욱 들어갑니다. 반면, 전분물을 손으로 세게 내리치면 단단해져서 손끝도 들어가지 않고 손이 튕겨 나옵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물질을 ‘비(非)뉴턴 유체’라고 합니다. 뉴턴 유체는 가해지는 힘의 크기가 커질수록 변형률도 비례해 커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반면, 비뉴턴 유체는 힘의 크기와 변형률이 일정한 정도로 비례하지 않습니다. 약한 충격에는 물처럼 흐르지만, 충격이 강할수록 고체처럼 더욱 단단한 성질을 가지는 것이 비뉴턴 유체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 슬라임도 이런 비뉴턴 유체에 속합니다.
슬라임을 활용한 과속방지턱 실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팀은 옥수수전분과 물의 비율을 각각 10:12, 10:10, 10:9로 섞은 용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용액을 고무주머니에 넣어 만든 전분 방지턱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몸무게 73kg인 사람이 무게 15kg 자전거에 타고 각각 시속 5km, 15km, 25km로 달려 전분 방지턱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이때 자전거 프레임에 장착한 진동측정기로 충격 정도를 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시속 5km의 저속으로 전분과 물의 비율이 10:12, 10:10인 전분 방지턱을 밟고 지나가면 주행자가 평지를 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진동이 적었습니다. 전분과 물의 비율이 10:10인 방지턱은 시속 15km 이상으로 넘을 때 자전거 주행자에게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전분과 물의 비율이 10:12인 방지턱은 시속 25km로 지날 때만 주행자가 진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분과 물의 비율이 10:9인 방지턱은 모든 속도에서 진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 전분과 물의 비율이 10:12, 10:10인 용액이 방지턱을 만들기에 적합한 셈입니다.
연구팀은 “적정속도 주행 시 충격량 저감을 통한 탑승자의 불쾌감, 차량 파손, 소음 발생 등 단점을 해결하고 과속 시 과속방지턱 역할을 해 통과 차량 속도 감속을 유도하여 안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 목적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전분 용액으로 만든 방지턱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전분 용액을 가만히 두면 전분이 물에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분과 물이 분리되어 재료의 불균일성을 초래하는 문제점이 발생해 계면활성제 사용 등 방법으로 이를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연구팀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계획입니다.
슬라임처럼 말랑말랑하면서 속도에 따라 똑똑하게 모습을 바꾸는 새로운 과속방지턱이 우리나라 도로 곳곳에 설치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자료 출처. 한국복합재료학회 논문 <비뉴턴 유체를 이용한 스마트 과속방지턱 소재 개발>(정인준, 김은정, 유웅열, 나원진 202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