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단속 중 발치로 인해 음주 측정기를 제대로 불지 못했다면 음주 측정 거부가 될까? 화물차 운전자 A씨는 정차 후 차 안에서 자다가 음주 측정을 하게 됐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글. 차은서
감수. 천주현 변호사 (대한변호협회 형사전문변호사)
― 똑똑
“선생님! 경찰입니다. 일어나세요!”
“...뭐야아”
상필(가명)은 시끄러운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눈을 떴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창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다름아닌 경찰이었으니까.
“...무슨 일이죠?”
“음주운전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음주 측정에 응해주셔야겠습니다.”
자동차 문을 열자, 초여름 단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상필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니, 자는 사람이 음주운전이라뇨. 하루 종일 일하다가 휴게소에서 쉬고 있는 사람한테 너무한 것 아닙니까?”
황 경장은 찬찬히 상필을 살폈다. 자다 일어나서 부스스한 모습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홍조를 띤 얼굴 하며 알싸한 술 냄새까지. 음주를 했다는 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약주 한잔하신 것 같은데, 음주 측정 좀 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황 경장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 알았어요.”
마지못해 상필은 음주 측정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 후
“더요, 더! 더 세게 부셔야 합니다.”
“아니, 제가 오늘 이를 빼고 와서 힘이 없네요.”
“특별히 지금 복부나 호흡기 계통 수술이 없으셨지요? 그리고 교통사고 직후라서 심각한 호흡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발치 상황이라도 힘껏 불어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발치도 수술 맞잖아요. 심하게 불면 실밥 터져서 저는 못 불어요.”
“자꾸 이러시면 본인한테 불리할 수 있습니다. 세게 불어야 정확하게 나옵니다.”
“아, 내가 불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지난한 음주 측정은 50분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계속됐다. 컴컴한 밤, 상필과 황 경장 사이에는 풀벌레 소리와 측정기 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는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황 경장은 혈액채취 측정을 떠올렸다.
“선생님 혈액채취로 측정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렇게 하시겠어요?”
“아무래도 기계가 고장 난 거 같은데 내가 피까지 뽑아야 합니까?”
“선생님, 자꾸 이러시면 음주 측정 거부로 처리하겠습니다.”
수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황 경장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 상필이 말했다.
“아니 계속 불었는데 무슨 소리예요?”
황 경장은 상필을 향해 다시 한번 혈액채취에 의한 측정 방법이 있음을 알렸지만, 상필은 끝내 거절했다.
겨우 진술서만 받을 수 있었던 황 경장은 지구대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황 경장의 손에는 목적 없이 사용된 호흡 측정기의 불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한 달 후, 상필은 법원에서 날아온 판결문을 받을 수 있었다.
“벌금 7백만 원?!”
상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근근이 살아가는 상필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상필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상필은 다시 재판정에 섰다. 항소심을 준비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미 운전면허도 취소돼 일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제 상필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재판에 집중하는 것 뿐이다.
“저는 음주 측정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발치로 인해 입에 힘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입니다. 아니면 그때 사용한 음주 측정기가 고장이 났을 거로 생각합니다. 7백만 원은 너무 과도합니다!”
판사는 사건 진술서와 그날의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판사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건번호 2022노716 판결하겠습니다.”
상필의 눈은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입에 고정됐다.
“본 사건은 음주운전 의심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음주 상태로 보이는 피고인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한 피고에게 음주 측정 거부로 원심에서 벌금형이 내려진 사건입니다. 이에 피고는 고의에 의한 측정 거부가 아니었으며, 음주 측정기 오작동 가능성을 근거로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사건 당일 사용한 음주 측정기는 사건 전후로 정상 작동했다는 점, 음주 측정 당시 치아 결손이 있었지만 호흡에 의한 음주 측정은 입술의 접착력을 이용해 불대를 입에 물고 숨을 불어 넣는 방법으로 치아 상태와는 거의 무관해 설령 치아가 발치가 된 상태라도 충분히 가능한 점, 피고인의 호흡 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볼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점, 당시 경찰관이 혈액채취에 의한 측정 방법이 있음을 고지하였음에도 거부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의 음주 측정 불응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원심 판단이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는 바입니다. 또한, 원심판결 선고 후 피고인의 양형에 반영할 만한 새로운 정상이나 특별한 사정변경을 찾아볼 수 없고, 피고인의 상황과 이 사건 기록 등 여러 조건을 원심판결의 양형 이유와 대조했을 때도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지나치게 무거운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합니다.”
― 탕탕탕!
상필은 고개를 떨구었다. 더 이상 판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커다랗게 불어난 후회의 감정만이 상필을 뒤덮을 뿐이었다.
“가족들은 어떻게 보지···.”
상필은 판결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며 터벅터벅, 법정을 걸어 나왔다.
이 이야기는 음주운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음주 측정 요구에 불응한 화물차 운전자 A씨의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울산지방법원 2022. 7. 8. 선고 2021고정561 판결 [도로교통법위반(음주측정거부)] 주문 피고인을 벌금 7,000,000원에 처한다.
울산지방법원 2023. 6. 8. 선고 2022노716 판결 [도로교통법위반(음주측정거부)]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