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차은서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때를 기억한다.
명함에 찍힌 이름 석 자가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아무것도 아니던 내가 스스로 밥벌이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것만 같아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의 부푼 마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분위기를 따라가느라 가랑이는 찢어질 것만 같았고 한 것도 없이 퇴근하게 되는 날은 계속됐다. 도대체 잘 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평생 받아온 전화를 받는 것까지 어려웠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쓰디쓴 자책과 함께 진정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첫 연애의 기억도 한 조각 꺼내본다.
‘이렇게 하면 싫어하려나?’
‘이건 어떻게 생각할까?’
약속이 있는 날이면 옷장 앞에 서성이며 반나절을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좋아하는 이를 만나게 될 거란 설렘도 분명했지만 혹여나 실수를 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덕분에 고장 난 로봇처럼 우스꽝스러운 실수는 연달아 이어졌다.
처음이란 이렇듯 언제나 어리숙한 실수투성이다. 새로운 세상에 속하게 됐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차올랐다가도 혹독한 현실 앞에 좌절하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게 됐을 때의 뿌듯함이란!
하지만 실전은 생각과 달랐다. 분명 배우고 시험도 본 건데 모든 것이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이래서 기능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지, 나?’
스스로 참 한심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삶은 언제나 처음을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속하기 위해 애쓰고, 매번 새로운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사회초년생의 시기는 지났지만 새로운 위기는 언제나 찾아오는 것처럼. 첫 만남의 설렘은 무뎌졌지만 새로운 갈등과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처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전부 괜찮아진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성장해 나갈 것이며 또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든 처음엔 엉망진창이고 실수를 하기도 한다. 너무 조급하게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탈이 나는 법이다.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것 같다고 자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그저 배운대로, 그게 내 몸에 익숙해지도록 반복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초년생일 때의 실수가 헛웃음 날 정도로 쉬운 일인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던 낯선 이와도 어느새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또다시, 처음이다. 새해가 되면 신년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생활을 다짐하곤 한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작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다.
어쩌면 도로 위에서의 삶도 우리 삶과 닮아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 가보는 길, 처음 운전대를 잡는 일.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쳐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변화 앞에서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새로운 도로교통법이 생기고, 새로운 단속방법이 생겨나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익숙한 길은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 가는 길은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 보자.
막연한 불안도 성장과 함께 자신감이 될 테니까.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내 앞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내 앞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그런 길은 없다.
- 메기 베드로시안 <그런 길은 없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