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를 가리는
가장 위험한 가면

과도한 자신감이 방심을 부른다

운전대 심리학
글. 임은주(임은주심리상담센터장)
“나는 운전을 잘하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으신가요? 주변을 둘러보면 운전에 대해 유독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람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도로 위에서 과도한 자신감은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최근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늘어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음주운전 또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서 생긴 잘못된 습관일 수 있습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과도한 자신감.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하는 걸까요?
음주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잘못된 자신감

먼저 음주운전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주운전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서 발생하는데요. 자신은 특별히 운전도 잘하고 그동안 사고를 낸 적도 없기 때문에 음주운전을 해도 큰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자신감이 지나치면 ‘잘못될 수 있다’라는 부정적인 신호를 외면하기 쉬워집니다. 지나친 자신감이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인데요.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이 오히려 자신감을 증폭시켜 자만하게 만드는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억눌려 생긴 자신감은 매우 충동적이고 불안정합니다. 따라서 과도한 자신감이란 진정한 자신감이라고 하기 어려운데요. 일종의 허세와도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고, 자신도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는 심리 기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심리 성격 발달단계의 세 번째 단계인 3세~6세 정도의 유아기에 자기애가 최고조를 이룬다고 보았는데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건강한 자신감을 뿌리내리는 기틀을 만듭니다. 이때 부모님의 보호 아래 건강한 자기애를 마음껏 누리는 경험, 즉 전능감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는 것이죠. 그러니 과도한 자신감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친 자신감의 깊은 속내, 열등감

최근 사회적으로 나르시시즘(자기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데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즘은 건강한 정서와 성장에 밑받침이 되는 소중한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성 성격장애죠. 이는 극단적인 자기애 성향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는 증상을 뜻합니다. 이런 성향이 운전 중에 나타난다면 정말 위험하겠죠?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보통 어린 시절 부모와의 유대관계 속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년기에 충분한 자기애를 경험하고, 인정받으며 자신감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열등감이 자라나게 됩니다. 이렇게 상처로 얼룩진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오히려 외면해 버리고 맙니다. 대신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과도한 자신감이라는 가면을 쓰는 겁니다. 쉽게 말해 과도한 자신감은 열등감의 다른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특성은 술을 마시거나 자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특히 쉽게 나타나기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집니다.

두려움과 자신감의 상관관계

운전은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요소가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도한 자신감은 이런 위험성을 두려움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부정적인 측면은 회피하고 과도한 자신감으로 두 눈을 가리는 것이지요.

신호등에도 녹색 신호뿐 아니라 적색 신호가 꼭 필요합니다. 위험에 대한 경고와 두려움은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신호죠. 자신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감이 과도해져 생긴 자만은 두려움의 신호를 가려 방심하게 합니다. 희망 회로에 갇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과도한 자신감이 어린 시절에 기인했다고 해서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경험을 바라보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경험으로 건강한 자기애를 조금씩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해 나가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면 자신감은 빠르게 채워질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습니다. 억지로 마주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부터 조금씩 해결해 보는 겁니다. 사소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면서 ‘성공 경험’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게임처럼 임무를 완수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애의 가면을 쓴 열등감을 내보내고 건강한 자기애가 마음에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 모든 현상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자신감의 아래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는 법입니다. 두려움과 맞서는 자신감이냐, 두려움을 감추는 자신감이냐의 차이일 뿐이죠.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운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에 경각심을 가져야 진정한 의미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적색 신호를 잘 지켜야 녹색 신호에서 더 즐겁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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