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수덕사
고요한 산사의 아침은 온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자연의 숨결에 귀 기울이는 일로 시작된다. 수덕사는 백제의 온화한 미소와 깊은 지혜를 간직한 천년 고찰이다.
덕숭산 자락에 안긴 수덕사에 들어서면 천 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고요가 먼저 맞이한다.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이 절은 고려 시대 나옹화상이 중창하면서 더 깊은 수행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딘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세워져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아한 구조에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은 이 건물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눈길이 절로 멈춘다. 기둥마다 배어 있는 시간의 주름, 처마 아래 낮게 깔린 그림자까지도 범상치 않다. 수덕사에는 한때 만공 스님과 일엽 스님, 이응로 화백이 머물렀던 흔적도 남아 있다. 이들은 예술과 사상의 경계를 넘어 삶의 본질을 탐구했던 사람들이다. 수행과 예술이 겹쳐지는 그
자리에 서 있노라면, 침묵조차 묵직한 울림이 되어 되돌아온다.
웅장한 대웅전 뒤편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문득 시간이 멈춘 듯한 특별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화려한 장식이나 꾸밈은 없지만, 절제된 아름다움과 소박한 자연미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일상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온 마음도 이곳에서는 조금씩 느슨해지며 편안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충청도
특유의 여유로운 정서가 선물하는 귀중한 시간이 아닐까.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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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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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주차장(유료)
조선 후기 예술과 사상의 정수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예산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또 하나의 소중한 장소가 있으니, 바로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다. 조선 후기 금석학과 서예, 그리고 회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던 추사는 이 예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며 학문의 기초를 다졌다. 고택의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치 오래된 수묵화 한 폭이 눈앞에 펼쳐지듯 담백하고도 깊이 있는 풍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안방과 건넌방, 부엌이 연결된 구조다.
특히 사랑채에는 추사 선생의 유묵과 유품, 그가 남긴 학문과 예술의 발자취가 전시돼 있다.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마당 끝에서 ‘세한도’를 그리던 추사의 고독한 심경이 스며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유배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고집과 절개가 이 집 구석구석에 머물고 있다.
고택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곳에서 사색에 잠겨 걸었을 옛 선비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주변의 아늑한 마을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 고요한 길은, 바쁜 현대인들의 마음을 비우고 사색에 잠기기에 더없이 넉넉한 공간을 선사한다. 예산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처럼
차분하고 깊이 있는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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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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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주차장(무료)
청년의 순정이 남은 곳
윤봉길 의사 유적지
마지막 발걸음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자리한 윤봉길 의사 유적지로 향한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제의 고위 관료들을 향해 단독 의거를 일으킨 윤 의사의 삶은 조국의 독립을 향한 결연한 맹세와 헌신으로 가득하다. 그의 고향 마을에 정성스럽게 조성된 이 유적지는 사적으로 지정된
역사적 장소다. 생가인 광현당과 성장기 거처인 저한당, 그리고 충의사, 유물전시관, 부흥원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윤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 정신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전시관에는 윤 의사가 남긴 유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월진회’ 깃발, 기사년일기, 농민독본 등 그의 생각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그중 일부는 보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낡은 흑백사진 속에서도 또렷한 눈빛으로 미래를 응시하던 윤봉길의 청년 시절을 마주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매헌 윤봉길 평화체험공원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따스한 햇살 아래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싱그러운 생기를 더한다. ‘나의 죽음이 나라의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스물다섯 청년의 순수하고도 강인했던
애국의 바람은, 오늘날까지도 이 고장 사람들의 가슴 속에 변함없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윤봉길 의사 유적지(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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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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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절기(3월~10월) 9:00~18:00
동절기(11월~2월) 9: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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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주차장(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