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12 Vol.84
돌아보길 돌아보길

비로소 마주하는 것들

안녕, 그리고 안녕

글. 차은서

목적지로 가는 여정

나는 늘 보통보다 빠른 걸 좋아한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다다를 때면 묘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빨리 도착해서 여유로울 줄 알았건만, 놓친게 많은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이상한 일이다.

“왜 벌써 겨울이야?”
한 해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은 이맘때면 버릇처럼 뱉는 말이다.

“뭔가 열심히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네.”
“나 진짜 바빴는데, 왜 그랬지?”
투정 섞인 말을 내뱉으며 허무한 감정을 토로한다.

왜 우리는 한 시기가 마무리될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무엇을 놓친 것일까?
얼마 전,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쉬지 않고 달려 예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가족들을 내려 주었다.

“언니, 어디 훈련 온 거 같아.”
기껏 열심히 데려왔더니 훈련이라니! 순간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멋쩍어졌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여유를 즐기는 순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거나, 여유롭게 음악을 듣는 시간. 그런 과정도 필요했을 터였다.
“미안, 도착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여행처럼 살아가면 될 것을

여행의 즐거움은 어떤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 도착하기까지의 과정. 일정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그 과정은 인생과도 맞닿아 있다. 삶은 여행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즐겁게 살아내고 싶었다. 그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뿐.

아인슈타인은 달리는 자의 시간이 더 천천히 간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인생이란 여행길에서는 즐겁게 산 사람의 시간이 더욱 천천히 흘러간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을 음미하며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에겐 모든 게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운다. 그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다음 목표를 또 정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다음 목적지로 갈 생각만 하는 지난 날 나의 모습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나면 목적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찢겨진 달력의 마지막 장처럼 허무하다.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창밖의 풍경과, 변하는 날씨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즐거울 수 있었던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이 누군가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음미하며 시간을 가득 채워왔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보길

목적지에 다다른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그저 다음 목적지만 보인다면 잠깐만 주변을 돌아보자. 허무하다며 흐르는 시간을 야속해 하기엔 아직 느껴야할 감정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새해 목표도 좋지만 잠시 멈춰 그저 흘려보내기 아쉬운 순간들을 마음에 담아보자.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난 추억도 되새기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마음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올 겨울은 넓게 펼쳐진 탄탄대로보다 구불구불한 흙길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해질지도 모른다.
그 시간 속에서 새로운 출발의 씨앗이 피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2024년 <신호등>도 그렇게 독자와 함께했길 바라본다.

내일이
당신의 오늘을 서두르게 하지 마세요.
만약 그러면 너무 많은 대단한 순간들을
놓치게 될 거에요.

당신과 같이 있는 사람,
그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 주세요.
완전히요.

- Pat. A. Fleming(팻. 에이. 플레밍),
Live in the Moment 中

26466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혁신로 2 (반곡동)
 |  고객지원센터 1577-1120 (발신자 부담)
 |  전문번호 ISSN 3022-4942(online)

Copyright ⓒ2024 KoROA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