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우리 고유의 소리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판소리는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전통예술. 우리 소리를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으로 떠나 본다.
글. 편집실
참고 자료. 한국전통연희사전
동리 신재효 (1812~1884)
19세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이론가이자 비평가, 창작자, 집성자. 판소리 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고창 신재효 고택
‘판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예술이라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명성과는 달리 첫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못했다.
전통 음악과 문학, 연극이 결합된 판소리. 한국 전통예술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판소리의 역사는 무려 400년이 넘는다. 17세기부터 등장한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북을 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와 말, 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극이다. 하층민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술 문화지만 18세기 들어 양반 계층도 함께 즐기기 시작했으며,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왕족도 판소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명창을 적극 후원하기에 이른다.
판소리의 입지가 갑자기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신재효’라는 이름을 빼 놓을 수 없다. 신재효는 19세기 고창의 중인이자 판소리를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를 단순히 ‘이론가’라는 한 마디로 소개하긴 어렵다. 판소리 이론을 집대성한 이론가이자, 비평가, 창작자이기도 한 그는 동시에 판소리꾼을 교육하고 예술활동을 지원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집에 명창 김세종을 지내게 하고 판소리 교육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동편제에 속했던 박만순, 김세종, 전해종, 김창록과 서편제에 속했던 이날치, 김수영, 정창업, 등을 이론적으로 지도했으며,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거론되는 진채선과 허금파 등도 배출했다. 최초의 판소리 서적 『조선창극사』를 저술한 장본인이며, <춘향가>, <박타령>, <적벽가>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판소리를 개작, 집성하기도 했다.
ⓒ고창판소리박물관
신재효 선생의 업적은 판소리 발전에 있어 독보적이다. 현재까지도 판소리계에 있어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생전 신재효 선생이 남긴 업적에 힘입어 아직까지도 고창 지역에서는 국악인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신재효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그의 생가는 ‘신재효 고택’으로 남아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됐다. 국악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동리국악당은 신재효 선생 고택 맞은편에 지어져 그의 업적을 기린다. 인근에 위치한 고창판소리 박물관 또한 신재효 선생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판소리의 유·무형 자료를 전시하고 대중에게 수준높은 판소리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렇듯 고창의 판소리 역사는 신재효 선생 고택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2008년, 도로명주소가 시행되면서 신재효 선생 고택과 판소리 박물관, 동리국악당을 연계한 도로 207미터가 ‘판소리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긴 시간 민족의 생애를 담아낸 판소리는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중이다. 신재효 선생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판소리, 이제는 우리가 그 뜻을 이어나가야 할 때다. 올 여름, 고창에서 우리의 소리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