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8 Vol.82
돌아보길 돌아보길

파랑새는 어디에나 있다

일탈과 일상 그 사이에서 찾은 행복

글. 차은서

일탈이 시작되는 여름

셰익스피어의 소설 <한여름 밤의 꿈>은 왜 하필 여름이었을까. 서양에서는 한여름(Midsummer day)에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숲 속 요정을 만난 주인공들에게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소설 배경이 여름인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몇 해 전, 인터넷상에서는 모든 문장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는 게 밈(유행)이었다. 앞에 아무 말이나 쓰고 마지막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이쯤 되니 ‘여름’은 그 자체만으로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지루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 줄 것만 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 겨울방학보다 여름방학이 더 설레고, 길지 않은 여름휴가가 언제든 쓸 수 있는 연차보다 더욱 기대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여름이 시작됐다.”

이른 더위가 봄의 끝자락을 알릴 때면 어김없이 우린 ‘여름’을 기대한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장마는 얼마나 길까’ 하는 짧은 걱정 뒤에는 언제나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지?’가 이어진다. 여름의 시작과 동시에 우린 ‘일상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다.

파랑새를 찾아서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하품 나오는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가 곤두설 정도로 자극적인 자유를 갈망한다. 일탈의 순간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온몸을 휘감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겪는 뜻밖의 행운,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영화 같은 운명의 상대. 일탈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이다. 마치 자유롭게 떠도는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같다.

“솔직히, 그건 너무 망상 아닌가?”

메말라 있던 감성을 긁어모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한 줄은 나를 현실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희망이 ‘일탈’이라는 단어를 너무 부풀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일탈을 ‘꿈꾸기’ 시작했을까.

어릴 때만 해도 일상이 이렇게 지루하다 느끼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이 새로운 에피소드 같았고,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새롭고 신기한 일이 넘쳐났다. 하루하루가 기억하고 싶은 일로 가득했다. 하다못해 학교 급식 식단마저 외울 수 있었다.

지금은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다. 어느 날은 하늘을 제대로 볼 새도 없이 캄캄한 밤이 돼 있기도 하다. 주말은 더하다. 눈 깜짝할 새 이틀이 사라져버린다. 딱히 기억할 만한 것도 없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뇌 과학자는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의 뇌가 반복되는 장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해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던 어린 시절엔 똑같은 하루도 새롭게 받아들이고,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기 바쁜 어른들은 그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탈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여유’에 있는 게 아니었을까? 집에 있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는 소설 <파랑새>의 주인공처럼, 허황된 일탈을 꿈꾸느라 소중한 일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일상에서 찾은 특별함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다. 올해는 어디로 떠나는 게 좋을까, 계획을 세우는 순간마저 기대감에 벅차오른다. 그날만을 바라보며 오늘도 지루한 일상을 버티고, 또 버텨 나간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보자. 이 긴 여름이 오직 며칠의 휴가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론, 평소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아나가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들을 그저 일상으로 치부하며 흘려보내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비가 오면 장화를 신을 수 있거든!” 언젠가 장마를 좋아한다는 친구의 이유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평소에도 남다르게 긍정적인 친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길고 불편한 장마마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에 존경심까지 느꼈다.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인 것 같아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어떤 날은 신호등이 나를 위해 초록불만 밝혀주는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매일 가던 카페에서 쿠폰을 다 모아 공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이런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하루는 지루함이 아닌 특별함으로 가득해 질 것이다. 여행 전 설렘도 좋지만, 여행 후 돌아오게 될 특별한 일상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다. 파랑새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 호시노 도미히로(일일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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