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장마철, 젖은 노면을 달릴 때
자동차의 움직임이 불안한 이유와 대처 방법.
글.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차를 운전하기에 많은 위험 요소가 따른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운전자 시야를 극도로 제한하고, 노면에 반사되는 빛을 산란시켜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마찰력이 줄어들어 코너링이나 긴급 제동 시 자동차의 한계 성능이 대폭 낮아진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수막현상으로 자동차의 움직임이 불안해지고, 심할 경우 아주 낮은 속도에서도 운전자가 대처할 수 없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수막현상(水膜現象, Hydroplaning)’이란 물에 젖은 노면을 빠르게 달릴 때 타이어와 노면 사이로 지나가는 물이 완전히 배출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순간적으로 타이어가 물의 저항으로 밀려나면서(떠오르면서) 노면과 마찰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전자는 원하는 대로 차를 조종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노면에 물이 흐르고 있을 때는 타이어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물을 가르며 노면과 접촉을 유지한다. 반면 비가 많이 내리거나 노면에 흐르는 물의 양이 많거나, 혹은 웅덩이처럼 물이 고여있는 곳을 지날 때는 타이어 배수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주행 속도가 빠르면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물이 배수될 시간이 부족하여 수막현상이 발생한다.
자동차 타이어는 성인 남성의 손바닥 크기 면적으로 노면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타이어 4개의 총 접지 면적은 A4용지 한 장 정도다. 이런 접지 면적으로 무게가 1,500킬로그램 이상이나 되는 쇳덩어리를 움직이고, 방향을 바꾸게 한다. 따라서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이나 물이 고여있는 곳을 지날 때 수막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운전자가 타이어를 체크하고, 주의해서 운전하면 수막현상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1 타이어 트레드 체크
일반 자동차에 사용되는 레디얼 타이어는 노면과 접촉하는 중간 부분에 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세로로 만들고(그루브), 바깥 방향으로 물이 배출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사이프). 이것을 통틀어 ‘트레드’, 혹은 ‘트레드 패턴’이라고 한다. 트레드의 깊이는 결국 수막현상과 직결된다.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타이어 고무(컴파운드)가 마모되며 트레드 깊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자는 2~3개월마다 타이어 상태를 체크해서 배수가 가능한 컨디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트레드의 깊이는 타이어 종류나 목적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보통은 최소 3밀리미터 이상 깊이가 필요하다. 이 부분을 좀 더 편리하게 확인하기 위해 타이어 제조사는 그루브(세로로 파인 홈) 안쪽에 살짝 튀어나온 돌기를 만들어 두기도 한다. 타이어 고무가 마모되어서 홈이 노면에 닿는다면 빗길에서 배수 능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저속에서도 타이어가 수막현상을 일으켜 쉽게 미끄러질 수 있으니 교체가 필요하다.
#2 타이어 공기압 체크
타이어 트레드가 일정한 배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기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아서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 면적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 그만큼 빗길에서 배수 능력이 떨어진다. 반면 타이어 공기압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도 수막현상 상황에서 노면과 접지 면적이 줄어들어 불리하다. 모든 타이어는 제조사가 권장하는 적정 공기압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참고해 2~3개월마다 공기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특히 공기는 외부 온도에 따라 밀도가 변하기 때문에 겨울에서 여름철로 변할 때 공기압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난다. 반대로 여름에서 겨울철로 계절이 바뀔 때는 공기압이 낮아진다.
#3 주행 속도를 줄이자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9조에 따라 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있는 경우 법정속도의 20%를 감속해 운전하고, 폭우로 가시거리가 100미터 이내일 경우에는 50% 이상 감속해야 한다. 여기에서 20~50% 속도를 줄여야 하는 이유에는 타이어의 배수 능력도 포함된다. 앞서 수막현상이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물이 충분히 배출되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즉 타이어가 물을 효과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면 수막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비가 내리는 날 운전 시에는 평소보다 속도를 줄여야 하고, 특히 물이 많이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는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위험을 예상하자
물웅덩이를 천천히 지나는 것이 수막현상을 막기 위해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시속 50~8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을 때 도로 가장자리에 물이 고여있는 곳을 발견하고 매번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따라서 비 오는 날 주행 중 물이 흐르는 길이나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이후 움직임을 예상하는 것이 좋다. 물웅덩이를 밟는 타이어는 순간적으로 저항이 걸리며 제어가 안 되는 느낌으로 변한다. 그리고 양쪽이나 혹은 한쪽 타이어에 수막현상이 발생할 때 차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 이때 당황해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거나 운전대를 돌리면 위험하다. 가속페달을 살짝 줄이면서 진행하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탈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물웅덩이를 지난 후 급격하게 차가 요동치거나 미끄러졌을 때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끝까지 바라보면서(시선처리) 차를 제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