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에서 한숨을 내쉬다 보면
‘이렇게 막히는데 왜 도로를 안 넓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처럼 차로가 새로 생기는 일은 많지 않다.
교통체증이 심한 길의 도로를 넓히지 않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교통체증 해소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본다.
글. 편집실
감수. 박신형(서울시립대 교수)
교통체증
일정 지역에서 자동차가 과도하게 집중되거나 교통사고, 도로 공사 등의 이유로 차량 통행이 정지되거나 비정상적인 통행이 계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교통혼잡비용
차량 정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비용과 주요 혼잡구간 등을 파악한 지표로, 다양한 교통정책 수립에 활용합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2023 교통정책 평가지표 조사사업>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교통혼잡비용은 65.22조원으로 추정됩니다. 전년 대비 13.2% 증가했고, 2016년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로별로는 고속도로가, 차종별로는 승용차가 교통혼잡비용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막히는 도로에서 운전하다보면 나보다 옆 차로에 있는 차들이 훨씬 잘 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유독 내가 가는 길만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인지적인 착각일 뿐이다?
1999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레델메이어와 스탠포드대의 팁시라니 교수는 인지적 차이에 의해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두 개 차로를 만들어 차량 위치와 행동, 속도의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다른 차에 의해 추월당할 때 시간이 내가 다른 차를 추월할 때의 시간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내 차로가 더 막힌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옆 차로의 속도가 빠르다?
미국 예일대 보스트롬 교수는 실제로 일정 구간의 도로에서 천천히 가는 차로의 차량이 빠른 차로의 차량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도로에 있는 전체 차량 중 무작위로 자동차를 선택하면 막히는 차로에 있는 차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문에 조사를 하면 자신이 있는 차로가 더 막힌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현상을 ‘유령체증’이라고 합니다. 유령체증을 설명하는 이론을 ‘반응시간 지체’이론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고속도로에서 맨 앞에 달리던 자동차가 차로를 변경하면 뒤에서 달리는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게 됩니다. 그럼 그 뒤차도 영향을 받아 속도를 줄이게 되죠. 이런 현상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도로가 막히게 되는 겁니다. 한 대의 차로 변경이 불러온 나비효과와 같다고 할까요? 운전 중 딴짓을 하다가 급감속을 하는 경우도 뒤차에 연쇄적인 영향을 줘 유령체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유령체증을 설명하는 그림
고속도로 맨 앞에 있는 자동차 ①이 차로를 바꾼다. ① 뒤에 있는 ②는 ①이 차로를 옮기자 멈칫하고 속도를 줄인다. ② 뒤에 있는 ③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줄인다. 맨 뒤에 있는 ④는 앞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 채 교통체증을 겪는다.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안은 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그만큼 정체돼 있던 차량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로를 추가했을 때 오히려 교통체증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브래스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 연구팀이 미국 뉴욕과 보스톤, 영국 런던의 도로를 선택해 브래스의 역설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여러 개라도 모든 운전자가 가장 유리한 지름길을 선택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운전자는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로 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도로가 증설되면 ‘다른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겠지’ 하는 생각에 기존 선택을 바꾸지 않아 오히려 교통체증이 악화되면서 전체의 불이익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렇다면 반대로 도로를 막는 경우는 어떨까요? 재미있게도 특정 도로를 없앴더니 도로가 있을 때보다 교통 흐름이 빨라졌다고 합니다. 오히려 도로의 증설이 교통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차간거리 유지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유령체증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충분히 넓히면 다른 차가 끼어들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반응시간 지체도 사라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막힌다고 앞차에 바짝 붙거나 차로를 변경하는 건 오히려 빨리 도착하는 데 유리하지 않다는 겁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떠오르지 않나요?
요즘 스마트 교차로 등 다양한 기술을 도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로에 사물인터넷과 5G 센서를 설치해 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효율적으로 도로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런 기술을 통틀어 C-ITS(Cooperative Intelligent Transport System)라고 하는데요. 이 C-ITS를 통해서도 교통체증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감응신호
교차로에 설치되는 감응신호 시스템은 차로에 센서(루프 검지기)를 설치해 방향별 이용차량을 감지한 후 필요한 신호만을 부여하고, 보행자나 진입 차량이 없을 때는 직진신호를 부여합니다. 감응신호 시스템이 신호대기 시간과 사고, 통행비용을 줄여 주는 것입니다.
연동신호
만약 교차로에 설 때마다 적색 신호등이 녹색 신호등으로 바뀐다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걸까요? 이는 운전자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지 않도록 도로에 적합한 차량의 속도와 교차로 사이의 거리, 신호주기, 제한 속도 등을 정확히 계산해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녹색 신호등이 켜지게 만든 신호체계를 ‘연동신호’라고 하는데요.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도로에서 차량이 정체되지 않도록 합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시는 맨해튼에 진입하는 70만 대 차량에 통행료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통행료 부과의 근거는 바로 교통체증이었는데요. 뉴욕 로워 맨해튼 지역은 세계에서도 심한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뉴욕시는 통행료를 부과해 진입 차량 수를 줄여 교통체증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부과되는 차량 통행료는 ‘혼잡 통행료’라고 합니다. 혼잡 통행료 도입은 실제로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교통혼잡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혼잡 통행료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남산 1·3호 터널과 연결도로 일부 지역입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일시적으로 혼잡통행료를 없애 효과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터널 통행은 12.9% 증가했고, 남산터널 통행량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삼일대로·소공로 도심 방향은 통행 속도가 9.4%, 13.5%씩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