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인명보호 장구 착용을 소홀히 하거나 올바른 도로 이용을 하지 않아 한 번 사고가 나면 큰 부상으로 이어져 도로 위 안전을 위협한다. 전동 킥보드 이용 중 사고를 당한 A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글 · 그림. 차은서
감수. 천주현(형사전문 변호사)
유독 맑은 날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듯하고, 바람마저 상쾌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약속이 생긴 영하(가명)는 오랜만에 전동 킥보드를 꺼냈다.
“이런 날 안 타면 섭섭하지~”
외출 준비를 마친 영하는 문을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서둘러야지!”
약속 시간까지 30분 남짓 남았지만, 영하의 마음은 급해졌다. 여유로운 주말 저녁, 더군다나 날씨까지 좋으니 1분 1초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순간이었다.
“이제 저녁이 돼도 춥지 않네!”
한껏 바람을 가르며 약속 장소로 향하던 영하는 바퀴에 무언가 걸린 것을 직감했다.
“어? 어어어!”
그 순간 영하의 몸은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을 살펴보니 빗물받이 덮개가 덜그덕거리고 있었다. 이내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입안에서는 비릿한 피맛까지 느껴졌다.
“어떡해, 내 이!”
영하의 치아는 이미 부러져 나뒹굴었다. 얼굴도 바닥에 쓸렸는지 쓰라렸고 가슴팍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영하는 얼른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상쾌한 주말 저녁 약속은 물거품이 된 채로···.
“치근 파절, 안면부 찰과상, 전흉부 좌상, 경추부 염좌, 좌측 수부 염좌···. 정말 위험할 뻔 했습니다. 전동킥보드 타실 땐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치아는 임플란트하셔야 하고, 나머진 입원 치료하면서 좀 지켜보죠.”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하는 아픔보다 억울함이 더 크게 올라왔다.
“이게 다 그 빗물받이 때문이에요. 멀쩡한 도로에 왜 그런 게 튀어나와 있어서!”
다음날 병원에서 눈을 뜬 영하는 바로 도로를 관리하는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에 대한 답변은 확인 후 보수조치 하겠다는 딱딱한 몇 문장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 영하는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하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억울함은 도저히 해소되지 않았다.
“도대체 도로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렇게 차가 다니는 도로에 또 누가 걸려 넘어지면 어떡하라고? 안전하게 관리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몸도 다치고 일도 못 나가고 이게 뭐야 정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영하는 해당 도로의 관리 주체인 지자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치료비, 그동안 일하지 못하면서 입은 손해,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다 받아내겠어! 두고 보라고!”
드디어 재판 날이 밝았다. 영하는 당연히 자신이 승소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애초에 빗물받이가 아니었다면 사고가 날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당시 상황을 기술한 자료와 양측 변호사 입장이 첨예하게 오간 뒤, 드디어 판결 시간이 다가왔다. 판사는 크게 한 번 호흡을 들이마신 뒤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사건을 살펴본 결과,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도로에 설치돼 있던 횡단 빗물받이 덮개가 고정되지 않은 채 폭 5cm, 깊이 3cm 이격이 발생했던 점과 규모 및 형태를 고려했을 때 바퀴가 작은 전동 킥보드 등의 이동수단을 이용할 경우 걸려 넘어질 위험이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또 관리주체인 피고는 사고 발생 다음날 원고의 민원을 접수한 뒤 해당 부분을 보수한 점, 원고가 운행한 전동 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이 최근 널리 보급돼 그 이용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사고 발생 이전에 빗물받이 덮개의 하자를 발견해 보수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에서 빗물받이 덮개는 그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가 이 사고로 인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역시! 그럼 그렇지! 덮개는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니까!”
영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의 말은 이어졌다.
“단, 전동 킥보드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로 일반차로를 통행하는 것은 그 위험성이 매우 높아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 안전사고에 대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원고는 차로를 주행하면서 안전모, 보호대 등과 같은 보호장비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고, 정지선 앞에서 정지하지도 않고 횡단 중인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한 채, 도로 가장자리가 아닌 중앙에서 그대로 주행하다가 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도로 상태를 면밀히 살피며 천천히 운전했다면 이 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다고 보이고, 이전에 해당 빗물받이 덮개의 하자로 인한 민원이나 유사 사고도 접수된 적이 없었던 점을 참작해 피고의 책임을 30%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 치료비의 30%와 위자료 일부를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편, 원고의 손해배상 범위 주장 중 휴업손해와 장해배상은 인정할 증거가 없습니다.”
탕탕탕-
판결봉이 사건 종결을 알렸다.
자신만만했던 영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손해배상금은 일부 지급받을 수 있게 됐지만 스스로 불찰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갑자기 그날 들뜬 마음에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신호 위반을 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던 자신의 모습도···.
“차로를 달리면서도 자동차랑은 다르다고 생각했었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영하는 빨리 법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사고가 나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관리주체가 있더라도 미리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까지 배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다시 돌아간다면 더 조심히 다닐 수 있는데···.”
하지만 이미 사고는 벌어진 뒤였다.
이 이야기는 전동킥보드 이용 중 도로 빗물받이에 걸려 넘어진 A씨가 도로관리 주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2. 14. 선고 2018나50286 판결 [손해배상]주문: 1. 제1심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186,331원 및 이에 대하여 2017. 10. 28.부터 2019. 2. 14.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기각한다. 3. 소송 총비용 중 90%는 원고가, 10%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전 지급 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