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스무 살 무렵 교통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된 주은미 센터장은 사회복지사와 교통사고예방상담사로 진로를 정하며, 장애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그는 장애를 인생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중도장애인: 비장애인의 삶을 살다가 사고나 병으로 장애인이 된 이들을 의미
글. 백미희
사진. 남윤중
안녕하세요. 대학생 시절, 교통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된 뒤, 2000년부터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현재 한국교통장애인협회(이하 협회)에서 교통사고예방상담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는 주은미라고 합니다.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고 여행을 다녀오다 기차 사고를 당했어요. 밤 기차라 새벽이었는데 기차와 플랫폼 사이에 몸이 끼인 상태에서 기차가 출발한 거죠. 80m 정도를 끌려갔는데, 그래도 신호원이 저를 발견해서 기차가 멈췄어요. 양하지 절단, 척수 손상을 입고 두개골도 깨지는 큰 사고였어요. 중환자실에 실려 갈 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고 해요.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가고 스무 살을 내내 병원에서 보냈어요.
절단 장애나 척수 장애는 통증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통증 때문에 1~2주씩 잠을 못 잤어요. 환상통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죠. 대소변 처리도 요도관 삽입과 관장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갓 스무 살이 된 저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죠. 그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미래에 대한 기대였어요. 사고 후 아버지께 “저 대학 붙었는데 다닐 수 있나요?”라고 여쭤봤더니 “휴학 처리를 해놨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학교에 가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 그게 동기부여가 됐어요.
제가 졸업한 학과 전공으로는 장애 때문에 취업이 잘 안되더라고요.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장애인들이 1년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직업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산직업능력센터에 대해 알게 됐어요. 거기서 300명 정도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게 됐는데, 부학생회장을 역임하며 동생이나 친구를 상담해 주기도 하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그러면서 ‘이런 일이 나랑 잘 맞는데?’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000년부터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입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는 교통사고 피해 당사자로 구성된 국토교통부 산하 단체예요. 교통사고 예방 및 교통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죠.
2016년이었어요. 이전까지는 협회에 대해 몰랐는데, 협회를 알게된 후 바로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제가 사회복지사 경험이 있으니까 교통사고 당사자로서 동료상담*도 가능하겠더라고요. 제 경력과 딱 맞는 일이었던 거죠.
* 동료상담: 장애로 인한 상처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료 장애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상담 과정.
상담실장으로 시작해 현재는 교통사고예방상담지원센터장으로서 상담과 교육, 교재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첫째가 교통사고 예방 상담입니다. 상담실장일 때 주로 담당한 영역이었는데, 협회 대표번호로 교통사고를 당한 분들이 연락을 주시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드리거나 정보를 제공해 드려요. 변호사나 손해사정사를 연결해 드리기도 합니다. 현재는 장애인 동료상담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데요. 동료상담사라는 게 있어요. 장애인 당사자들이 다른 장애인을 지지할 수 있도록 동료 상담사를 양성하는 건데, 장애 유형별로 요청이 들어오면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교통장애인이자 장애인 관련 사회복지사로 20년 이상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쪽 상담과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영유아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연령의 교통안전교육도 진행하고 있고, 교통사고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는 교통안전지도사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사람을 살리는 의사는 아니지만 장애 당사자로서 스무 살 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장애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도움을 드리고, 자립 할 수 있게 도왔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교통장애인이 일상을 회복하고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동료로서 지지해드리고 싶어요.
장애인에게 동료상담사나 교통안전지도사,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는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겪은 장애에 대한 이야기, 경험을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예시를 모아서 사례집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어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해요. 사실 교통사고로 피해를 입어도 보통은 가해자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거든요. 그럼, 이 분노가 오래 가요. 몇 년, 어쩌면 평생을 괴롭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항상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기 마련이거든요. 그게 희망이죠. 저 역시 장애를 갖게 된 후 제 천직을 발견하게 됐어요. 내 얘기를 하는 게 장애인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고, 교통사고 예방 교육이 되는 거죠. 장애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나 휠체어 사용자 등 교통약자는 교통사고에 특히 더 취약하다.
주은미 센터장이 유형별 교통약자가 꼭 유의해야 할 교통사고 예방법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