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승용차가 없다. 시내버스가 내 발이다. 버스에 오를 적엔 반드시 기사님께 먼저 인사한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그러면 기사님 또한 십중팔구는 맞인사(서로 마주하는 인사)를 한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기사님’은 기사, 즉 ‘운전사’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는 또한 국가 기술 자격 등급의 하나를 꼽는다. 공학적 기술 이론 지식을 가지고 기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법에 따른 기술 자격 검정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전의 기술직 6급 공무원의 직급, 지금의 ‘주사(主事)’에 해당하는 직급을 통칭하기도 했다. 여기에 ‘님’자를 붙였으므로 당연히 존중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관찰하건대 승객의 인사를 잘 받는 기사님은 대체로 친절하다. 또한 승객이 하차할 때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반면 그렇지 않은 기사님, 아니 ‘운전수’도 없지 않다. 어제도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2차로로 운행하던 승용차가 느닷없이 시내버스가 진행 중인 1차로로 끼어들었다. 하마터면 교통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브레이크를 급히 밟은 운전수는 분을 못 참았던지 입에서 육두문자(肉頭文字)를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승객들 모두에게 불편함이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운전수(運轉手)는 ‘운전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기사님’과는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다 아는 상식이겠지만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10분만 대화를 해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추측할 수 있다.
친절한 기사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많다. 승객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규범까지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신뢰가 쌓인다.
하지만 욕쟁이 운전수를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타인이나 승객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물에 젖어 드는 까만 잉크처럼 덩달아 승객들의 마음까지 불쾌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
욕쟁이 운전수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언행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싶다는 심리적 데자뷔까지 부담으로 안긴다.
기사님이든 승객이든 수더분한 사람이 좋다. 반대로 수제비태껸(어른에게 버릇없이 함부로 대듦. 또는 그런 말)은 그야말로 진상 손님(상점에서 비속어, 폭력, 직원 비하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손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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