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는 자동차만큼이나 수많은 차선, 중앙선, 정지선, 구분선, 교통안전표지 등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막 도색 작업을 끝낸 노면표시를 보며 반듯반듯한 칼 각의 깔끔함에 놀라움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런 노면표시 뒤에는 빠르게 달려오는 차들과의 전쟁을 치르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차선, 노면표시 등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무려 30여 년이나 차선 도색업에 몸담고 있는 구자필 대표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차선, 노면표시 등을 도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또 더 밝고, 더 긴 시간 유지할 수 있는 노면표시 방법을 찾고자 시험, 시공 등을 진행합니다. 우리 도로 사정에 맞는 도료나 작업 장비를 찾거나 개조하는 등 노면표시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 대표는 20년의 경력을 쌓은 뒤 10년 전인 2013년 본격적으로 업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 경기, 충북 등 차선 도색이 필요한 어디든 달려갔다.
“이제는 도로를 달리거나 길을 걸을 때 차선만 봐도 시공이 잘된 부분,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게 돼요. 일종의 직업병이죠. (웃음)”
평생 도로 노면표시 작업에 몰입해 있기 때문일까. 그의 말에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구 대표는 단지 차선 표시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색 장비의 개발에도 진심이다.
“예전에는 우리 자체 기술이 없어 도료와 도색 장비를 해외에서 들여와 시공했습니다. 수입 장비다 보니 고장이 나면 부품이 들어올 때까지 길게는 2~3개월 작업을 멈춰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내 도료 업체의 기술력 상승으로 도료 품질이 업그레이드된 것은 물론 도색 장비 또한 기술력이 좋아져 국내 도로 상황에 맞는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러한 도색 장비 개발에는 구자필 대표의 땀방울도 들어가 있다고. 구 대표는 ‘작업 효율성이 향상된 차량용 차선 도색 장치’, ‘차량용 이액형 차선 도색 장치’ 특허를 획득했다. 이 장치가 바로 ‘폴리우레아’다.
“유럽, 미국에서 들여왔던 장비를 써보니 우리 도로와는 조금 맞지 않더라고요. 시인성을 중시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선의 각, 시공의 깔끔함을 중시하다 보니 장비의 변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장비를 우리 도로 사정에 맞게 재조립했습니다. 이때 필요한 모든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사용 중 고장이 나도 바로 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 대표가 이러한 장비 개발에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잦은 민원과 사고 위험 때문이다.
“도색할 때 완전한 도로 통제가 어려워 도로 안전용품인 안전고깔(라바콘)을 길게 세워두고 시공했어요. 아무래도 도색 작업을 하면 길이 막히잖아요. 이때 민원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요. 또 일부 도로 통제로 자동차 속도가 느려지게 되면 사고 발생률도 높아져요. 차 속도가 느려지면 사고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더라고요. 그때부터 민원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빠르게 도색 작업을 마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도료를 빠르게 굳힐 방법을 떠올렸고, 도색 장비 또한 그것에 맞게 재조립했어요. 그 장비가 바로 앞서 말한 폴리우레아입니다. 현재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 차선 도색 작업할 때 폴리우레아를 이용할 때면 더 이상 안전고깔을 세우지 않습니다. 작업할 때 차선을 통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어요. 도로 물청소하는 살수차 아시죠? 그것처럼 자연스레 도로 위를 달리며 도색하는 거죠.”
시민들의 불편함을 줄이고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고민한 도색 장비 개발은 특허로까지 이어졌다.
‘더 밝고, 더 오래가는 차선 도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구 대표가 도색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구 대표는 ‘성실 시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성실 시공은 정상적인 도료로 법 규정에 맞는 시공을 하는 것이다.
본래 차선, 교통안전 표시 등은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부실시공은 곧 사고와 직결된다. 따라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비 오는 날, 또는 야간에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달릴 때 부실시공으로 작업된 차선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고가 날 수 있는 까닭에 첫째도, 둘째도 성실 시공임을 강조했다.
“지난 10여 년간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 고속도로, 일반 도로 차선 도색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단 한 건의 하자가 없었어요. 저희의 자부심이죠. (웃음).”
성실 시공만큼이나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안전이다. 일을 나서는 직원들에게 절대 많은 일을 하고 들어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빠르게 달리는 차들과 전쟁하는 곳이 이들의 일터인 만큼 일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늘 상기시킨다.
구 대표는 다양한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도료 자체가 화학제품이고, 화학제품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실질적 도색 장비 운용이 가능하다. 이렇듯 꾸준한 연구를 한 덕분에, 타 업체에서도 구대표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나아가 해외 업체 또한 새로운 도료나 장비가 나왔을 때 평가를 요청하기도 한다.
“최근 새 장비를 갖고 서울의 노면 도색 작업을 하는데 외국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작업 현장을 한참 촬영하는 거예요. 촬영을 말렸더니 자기 나라에선 이런 기술을 본 적 없다며 한국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예전에 우리도 도료며 장비 모두 수입해서 사용했잖아요. 누군가 우리 기술을 배우고 싶다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 깊은 곳부터 보람을 느꼈습니다. (웃음)”
노면 표시 도색 뿐 아니라 기술 개발에도 힘써 온 그가 최근 더욱 집중하는 분야가 생겼다.
“아시다시피 세계적으로 기후가 바뀌고 있어요. 최근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더 많이 내리고 있죠. 비의 양도 많아졌지만, 내리는 횟수도 증가했어요. 차선 또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차선이 빗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연구 중입니다. 이 외에도 건널목이나 방지턱에서 차가 미끄러져 나는 사고를 막기 위한 미끄럼 방지 차선을 개발 중입니다. 최근 강남구에 시험 시공을 진행했네요.”
긴 시간 차선 도색 분야에서 많은 시도를 하고 실패하며 결국 특허까지 획득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구자필 대표. 구자필 대표의 열정에는 ‘모든 것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총량의 법칙이 예외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