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폐선이 남긴 낭만 여행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유 있는 공간
글. 편집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한국철도공사, 원주시, 강릉시, 삼척시, 태백시, 정선군 제공
영화 속 장면을 하나 떠올려 보자.
열차가 다니지 않는 낡은 철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교복 입은 학생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모자를 날려버리고,
머리칼을 흩트려놓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무릇 철길에는 바람이 불어야
낭만이 시작되는 법.
강원의 철길도 그렇다.
폐선에 새로운 바람이 불자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계절 중 바람이 가장 좋은 이 가을,
낭만 가득한 철도 여행을 떠나보자.
서울에서 아우라지까지 기찻길 여행
폐광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정선

정선 아리랑 열차

정선 레일 바이크

아리랑의 발상지 정선.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우리나라 산세를 느낄 수 있는 강원특별자치도 대표 산골 마을이다. 서울에서는 자동차로 약 4시간 거리.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정선으로 향할 때는 출발지부터 기차여행을 선택하곤 한다.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해 양평, 원주, 제천을 지나 아우라지까지 이어지는 정선아리랑열차는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2, 7일과 주말마다 1회씩 운행한다. 종착역까지는 약 4시간이 소요돼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운전자의 부담 대신 온 가족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며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정선에 도착한 이후에도 낭만적인 기찻길 여행은 계속된다. 정선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레일바이크로 알려진 정선레일바이크 덕이다. 정선레일바이크는 정선의 깨끗한 자연을 온몸으로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 수단으로 손꼽힌다. 정선 구절리역에서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약 7.2km 길이의 철길. 반세기 전만 해도 석탄을 실은 열차가 지나는 길이었다. 탄광에서 채취한 석탄이 옮겨지던 길이 이제는 자연풍경을 감상하는 낭만 여행지로 재탄생했다.

정선레일바이크는 전체 구간을 지나는 데 평균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약 15~20km 속도로 달리며 산과 숲, 강, 계곡, 터널 등 다채로운 정선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아우라지역에서 출발역인 구절리역으로 돌아올 때는 풍경 열차로 갈아타면 된다. 같은 구간을 되돌아오는 길이지만 레일바이크를 타고 지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페달을 밟는 수고가 덜어진 덕분인지 더욱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선은 대표적인 폐광지로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릴 때의 풍경을 간직한 공간들이 많다. 폐광 마을의 정취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마을호텔 18번가를 비롯해, 광산의 풍경을 전시해 놓은 삼탄아트마인이 대표적이다. 기찻길을 따라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기고, 우리나라 산업화의 현장을 느끼고 싶다면 정선 기차여행을 기억해 두자.

정선 아리랑 열차

정선 아리힐스 짚와이어

동쪽 끝 해안선을 따라
동해를 달리는 낭만 여행

바다열차

안인해변

강원특별자치도는 한반도의 허리를 책임지는 지역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흐르는 깊고 푸른 동해안. 그곳을 따라 내달리는 열차가 있다. 바다열차가 그 주인공. 동해안 바다를 따라 달리는 바다열차는 전 좌석이 측면방향으로 배치하고 창문도 일반열차보다 크게 만들어 바다를 만나기엔 최적의 열차다. 개별좌석과 커플 좌석, 가족석, 특실과 프러포즈 석 등 다양한 좌석이 있어 여행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강릉에서 출발해 동해, 삼척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달리는 동안 넘실거리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가을볕이 만들어낸 윤슬의 반짝임.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의 냄새까지. 파도의 모든 것이 창문을 넘어 전해진다.

정동진

삼척역에서 내리게 되면 장호항은 그냥 지나치지 말 것.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한다.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장호비치캠핑장도 추천한다. 동해안 철도 유휴부지였던 공간을 야영장으로 사용하는 이곳은 서정적인 장호항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어 낭만 여행지의 마지막 코스로도 제격이다.

한반도 허리를 타고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시간여행

백두대간 협곡열차 내부

백두대간 협곡열차

백두대간을 따라 흐르는 또 다른 열차는 바로 백두대간 협곡열차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부터 경상북도 영주를 잇는 이곳은 백두대간 내륙을 넘나들어 가을빛으로 물든 산세를 감상하기에 좋다. 절벽과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백두대간 협곡을 사잇길을 다니는 덕에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마저 느껴진다고. 천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유리창으로 제작해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또한 장점이다. 철암 단풍 축제 시즌에 맞춰 방문하면 가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짙게 감상할 수 있다.

이왕 내륙산간의 정취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여행 시작지를 태백으로 잡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백두대간의 중추인 태백산을 비롯해 매봉산, 백병산, 함백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지대다. 태백 역시 80년대까지 석탄산업의 메카로 불리며 엄청난 발전을 이룬 도시다. 탄광에서 생산된 무연탄을 실은 화물 열차가 오가던 통리역은 오로라파크로 새롭게 태어났다. 철도와 별을 주제로 태백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고지대 테마파크다.

오로라 파크

매표소로 운영되는 통리역사를 지나 들어가면 세계 5개국의 고원 역사를 만나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별빛전시관과 야외공원에는 오로라와 사계절의 별자리를 만날 수 있어 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하기에도 좋다. 태백 유일의 타워전망대인 눈꽃전망대는 아찔하게 높은 산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탄광의 역사부터 전 세계 기차역을 오가며 별빛 여행까지 즐길 수 있는 오로라파크에서 출발한다면 백두대간의 다양한 표정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원주 중앙선 폐선 관광지 개발

2021년 폐선된 중앙선 반곡역도 관광지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원주시는 반곡역부터 금대리 똬리굴까지 7,706m 구간에 관광열차를 운행한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구간은 바로 ‘똬리굴’ 구간이다. 똬리굴은 일제강점기 1942년 개통된 중앙선 철도 치악산 자락에 있어 높은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똬리 형태로 건설된 터널이다. 총길이만 1,950m에 달하는 이 똬리굴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환상적인 빛 체험이 가득한 공간으로 꾸며진다.

또한 터널 미술관과 LED 수족관, 갤러리 카페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함께 조성할 계획이다.

산업과 교통환경이 변화하며 폐선을 활용한 관광지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의 특성과 문화, 역사가 어우러지는 관광지가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