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하나로 국내 최초, 아시아 최고 타이틀을 거머쥔 이가 있다. 2020년 1월, 죽음의 **랠리라 불리는 다카르 랠리에서 한국인 최초 출전, 아시아인 최고 기록을 갱신한 류명걸 선수다. 그는 52시간 40분 26초의 기록으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하며 종합 40위, 아시아 선수 중에는 1위, 루키 클래스 5위에 올랐다.
“좋은 기록을 냈다는 것도 물론 기쁜 일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회 자체보다는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힘들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를 취득하면서 이륜차와 연을 맺었다. 졸업 후 모터사이클 업체에 취직을 하면서 정비를 배우고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했다.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취업을 하다보니 어쩌다 자전거 업체에서 일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이쪽에 꿈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정비도 배우고 하다 보니 ‘주행을 해 봐야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선수까지 하게 된 거죠.”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며 ‘류명걸 선수’의 삶이 시작됐다.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에 대한 국내 인지도가 높지 않아 후원사를 찾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다카르 랠리에 참가할 때는 후원금에 전세금까지 보태야 했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결과 뒤에는 남모를 노력과 인내가 언제나 뒤따랐다.
“입문부터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기까지 20년이 걸렸어요. 많은 대회에 참가하면서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도 해보고, 그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다카르 랠리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 모터사이클
도로교통법상 총칭되는 이륜차. 본 인터뷰에서는 모터사이클 선수 및 대회 등 전문 분야를 언급함에 따라 번갈아 사용함.
** 랠리
합법적인 방법으로 공공도로나 사유도로 등에서 속도를 겨루는 자동차 경주의 한 종류.
*** 원동기장치자전거
배기량 125cc 이하의 이륜자동차(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경우 최고정격출력 11kW 이하).
다카르 랠리 이후, 그는 또 다른 여정에 접어들었다. CAMP R27의 대표로서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가 2020년 설립한 CAMP R27은 라이더를 위한 공간이다. 이륜차 종류에 상관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아지트이자, 대회 출전 선수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는 공간, 또 입문자에게는 안전교육과 정비교육을 진행하는 교육장이다. 그의 캠프에는 류 선수의 지나온 날을 증명하듯 다양한 종류의 모터사이클과 안전 장비, 트로피들이 전시돼 있다. 그중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부러진 운전대. 2016년 대회 중 넘어지면서 부러진 운전대를 챙겨와 걸어둔 것이다. 그는 항상 운전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안전을 다짐한다.
“이륜차는 사고가 나면 정말 위험한데, 속도를 겨루는 대회는 더 위험하죠. 대회 측에서도 이 선수가 대회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가졌는지 확인하고 안전 장비까지 하나하나 사전에 검사합니다.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대회에 참가를 못 해요.”
류 선수의 안전교육은 거의 스파르타 급이다. 4회에 걸쳐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이론교육이 이뤄진다. 시청각 강의, 운전 방법과 장비 착용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맞는 안전 장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말을 이어가던 그가 자신의 안전모에서 내장재를 꺼내 보인다.
“제 머리모양에 맞춘 거예요. 사람마다 두상이 다 다르잖아요. 기성품을 쓰면 안전모가 뜨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옆이랑 앞에 공간이 남아서 그곳에 완충재를 덧대 사용합니다.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이 골고루 분산 돼야 하니까요.”
그가 이렇게까지 안전교육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내에 전문적인 이륜차 교육 기관이 부족한데다 면허시험의 난이도도 해외에 비해 쉽다는 것이다.
“이륜차는 좀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국내에서는 이륜차 관련 전문 서적도 찾아볼 수 없어요. 대부분이 번역서인데, 번역하는 사람도 전문가가 아니니 설명이 모호하게 기술된 책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가진 자료들, 그동안 느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전문적인 교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오프로드에선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하며 속도를 경쟁하는 류명걸 선수. 그에게 가장 무서운 건 오프로드가 아닌 일반도로다.
“오히려 대회 때는 잘 안 다쳐요. 운전 중에 사고로 다친 것도 도로 위에서였어요. 앞차가 급정거하는걸 보고 급하게 세우다가 넘어졌죠. 도로에서는 주변 상황도 잘 봐야 하고, 방어운전도 해야 해요.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이륜차는 더 크게 다치죠. 요즘 많이 이용하시는 전동 킥보드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이륜차 운전자는 물론 전동 킥보드와 같은 PM 운전자도 늘었다. 이륜차의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현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의 우려처럼, 도로에서 ‘멋진’ 운전실력을 뽐내며 난폭운전을 하는 이륜차 운전자를 마주할 때가 적지 않다.
“요즘에는 안전장비 잘 착용하고, 자동차 뒤에서 신호 지키면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분들 보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안전의식이나 시민의식까지 느껴져서 참 좋더라고요.”
모터사이클 선수로서, 또 후배들을 이끄는 조력자로서,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다. 그에게는 삶과도 같은 모터사이클의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것.
“이륜차 운전자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운전자들이 보호장비도 잘 착용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며 행복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사람들한테 보여준다면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사람도 적어지지 않을까요? 안전하게만 탄다면 이륜차는 일상의 활력소로서 좋은 도구이자 친구로 인식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