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밝히는 불빛 燈

겁쟁이 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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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탄식, 감탄이 교차하는 변경의 섬

글. 김병훈 대표(월간 자전거생활)
북한 땅이 빤히 보이는 바닷가에는 그리움과 통곡에 지쳐 죽은 실향민들의 무덤이 늘어만 가고, 섬 가운데는 강화군에서 가장 넓은 평야와 저수지가 펼쳐져 곡창을 이룬다. 이 땅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교동도는 강화도에 버금가는 역사의 섬으로 각광받았을 것이다.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군사 보호구역에 묶인 교동도는 역사의 향기보다는 분단의 상처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금단의 섬’의 흔적을 찾아서
섬은 상당히 큰 편이다. 동서 12㎞, 남북 8㎞에 면적은 47.2㎢로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와 비슷하며 강화도와는 겨우 1.5㎞ 떨어져 있다. 북한쪽 황해남도 연안군까지도 2㎞밖에 되지 않는 최전선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계가 삼엄해서 일반인은 출입하기 쉽지 않은 금단의 섬이었다. 아직도 ‘교동도’ 하면 “어디에 있는 섬이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와 직결되는 국제항으로 번성했다. 외국배가 개성이나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에 걸친 1000년간 활발한 무역항이었음을 증명하듯 지금도 중세 이전 중국 화폐가 출토된다. 섬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260m) 정상 일대에는 화개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서쪽의 서한리에는 봉수대 터도 남아 있다. 이제 수백년에 걸친 몰락의 시대를 딛고 교동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4년 7월 강화도와 연결하는 교동대교가 개통되어 사실상 육지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군사 접경지대의 한계는 남아 있어서 외지인은 일몰 이전에만 출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전히 교동도는 수도권의 ‘낙도’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3.4㎞에 달하는 장대한 교동대교가 놓였어도 낮으로만 출입 시간이 제한된 ‘진입장벽’이 단절감을 준다. 게다가 섬의 낙후된 환경과 주로 실향민들인 주민들이 대부분인 모습은 수도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처럼 생경하다.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도 진짜 섬이었을 때와 보존 상태가 별 차이가 없다. 길 안내 표지판도 거의 없어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하지만 한산한 2차선 도로와 섬이 주는 단절감은 교동도 자전거 여행만의 차별점이다. 번화했던 시절을 찾을 길이 없는 교동읍성은 형편없이 허물어진 채 무심히 방치되어 있고,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이 유배생활을 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집터도 잡초에 묻혀 간다. 과거가 흔적만으로 남겨져 있는 이 쓸쓸한 길은 그래서인지 겨울에 더욱 빛난다.
70년대풍 골목과 광활한 평야의 대비
면사무소가 있는 대룡리는 섬의 중심지다. 하지만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수십 년 전 옛날로 돌아간 듯한, 정겹지만 낙후된 대룡시장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금이 간 담벼락에 위태하게 붙은 이발관 표시, 구식 간판의 다방, 낡은 구멍가게 등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시골 풍경이 남아 있다. 이제는 퇴락을 가려주는 화려한 벽화와 갓 생긴 세련된 가게가 흘러간 세월과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는 참이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고작 1시간여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대룡리에서 앞쪽으로는 강화군 전체에서 가장 넓은 교동평야가 광활하다. 양갑리 방면으로 이어진 3㎞ 가까운 직선도로는 내륙의 평야지대를 방불케 한다. 퇴락한 교동읍성과 읍성 구석에 비석 하나로만 남은 연산군 유배지에서 우울해진 마음은 교동평야의 장쾌한 경관에서 일단 해소된다. 교동평야는 섬이라고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다. 직선 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구릉지 마을은 양갑리다. 마을 언덕에는 수령이 410년을 넘고 높이 35m, 둘레 9.3m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뭔지 모를 영기(靈氣)를 발산하며 우뚝 서 있다. 양갑리를 거쳐 섬의 서쪽 끝으로 가면 난정저수지가 다시 눈을 번쩍뜨이게 한다. 둘레가 4.6㎞나 되는 난정저수지는 산간 골짜기를 이용하지 않고 평지에 사방으로 둑을 쌓아 만들어 체감으로 느껴지는 규모는 훨씬 더 넓다. 저수지 뒤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어 둑길 자전거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섬 동쪽에는 비슷한 크기의 고구저수지가 또 있는데, 화개산 북쪽 자락에 자리해서 규모감은 난정저수지 쪽이 훨씬 더 커 보인다. 강이 없어 비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섬에서 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는 풍부한 수원이 되어 너른 벌판을 넉넉하게 적셔주고, 방조제를 막아 갯벌을 간척한 들판은 강화군 최고의 곡창으로 해마다 풍년가를 부른다.
철책선에 가로막힌 망향대
교동평야와 난정저수지에서 탁 트였던 마음은 북쪽해안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움츠러든다. 철책선 너머로 보이는 척박한 북녘땅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황폐화시킨다. 6·25 전만 하더라도 썰물 때는 걸어서도 건너다녔다는 북한 땅은 헐벗은 나신을 드러낸 채 고통에 겨워하고, 땅과 사람이 토해내는 신음이 철책선을 넘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섬 최북단의 지석리 뒷산에서는 북한 땅이 더욱 가까이 보인다. 산기슭에는 북쪽을 향한 작은 제단이 있는데,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곳이라고 해서 ‘망향대’로 불린다. 망향대 주변은 이제는 거동조차 불편할 정도로 늙어버린 실향민들이 살아서 찾기보다 죽어서 묻히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낡은 마을과 텅 빈들판, 섬뜩한 철책선 옆을 달리노라면 그리움에 사무친 실향민들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과 시간적 다급함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섬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269m)에 오르면 섬 전체는 물론 강화도와 북녘땅이 훤히 드러난다. 화개산 남쪽 중턱에는 교동향교가 한때는 기개 높았던 꼿꼿한 선비정신의 저력을 추억하게 해주고, 더 높은 산자락에는 소박한 화개사가 숲속의 고요에 잠겨 있다. 교동읍성 남쪽 해안에 있는 남산포는 초미니 포구로, 횟집 몇 곳만이 손님을 맞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지금의 해군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잠시 있었다고 한다. 함선이 정박했던 계류석이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포구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의 군사적 대비가 얼마나 허술하고 미미했는지를 보여준다.
Travel Information
여행 코스
교동대교 → 교동읍성 → 대룡시장 → 양갑리 느티나무 → 난정저수지 → 지석리 망향대 → 고구저수지 → 교동향교 → 화개사 → 남산포 → 교동대교. 약 33㎞.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강화도 가는 길은 김포한강로가 가장 편하다. 88도로와 바로 이어져 있어 서울과 강화 중간 지점인 48번 국도 누산교차로까지 곧장 갈 수 있다. 이후 강화 방면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읍을 지나 계속 가면 고인돌로 유명한 하점면이다. 하점면 소재지를 지나 48번 국도로 계속 직진하면 교동대교가 나온다. 교동도에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이 화개산이다. 산 왼쪽(남쪽)으로 진입해서 섬 외곽을 시계 방향으로 일주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일부 구간은 길이 좁고 노면이 나빠 주의해야 한다. 망향대는 이정표가 없어 찾기가 어려운데, ‘지석리 266’ 주소를 찾아서 집 뒤쪽 산길로 100m가량 걸어가면 된다.
맛집
대룡시장에 있는 대풍식당(032-932-4030)은 맛깔나는 냉면과 고기국밥을 내놓는다. TV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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