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운전,
분노 속에 감춰진 아픔

도로 위에서 욱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까요?

운전대 심리학
글. 임은주(임은주심리상담센터장)
‘로드 레이지 (도로 위의 분노)’ 의 하나인 보복운전은 도로 위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특정 운전자를 위협하거나 공포를 조장하는 ‘협박운전’ 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특정인에게 고의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난폭운전과는 구별되는데요.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되지만 분노가 커지면서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분노의 민낯, 내면의 두려움

보복운전 사례를 보면, 난폭한 끼어들기나 급브레이크 등 비매너 운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진로를 방해받았다고 느끼거나 사소한 시비를 느낄 때 일어나는 분노와 복수심을 참지 못하는 것이죠.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매년 4천 건 이상의 보복운전이 적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보복운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인간의 뇌에서 감정의 영역인 변연계에 속하여 공포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아미그달라)’는 ‘파충류의 뇌’라고 불릴 만큼 진화적으로 뿌리가 깊은 부위입니다. 편도체는 뇌의 고차원적 활동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뿐아니라 기억과 감각, 운동 등의 다양한 부위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공포반응이란, 그만큼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경우인데요. 나를 공격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재빨리 ‘싸우든가 도망치든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느낀다면 살기위해 도망칠 테지만, 그 반대라면 싸워 이기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된 사람의 경우는 사소한 일들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늘 긴장과 두려움이 큰 상태이지요. 이를 자각하지 못하면 두려움과 공포는 곧 분노가 됩니다. 마음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압력밥솥을 안고 사는 셈입니다. 마음의 입장에서는 나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이제 그만 숨기에 지쳐 드러나고 싶으니까요.

발달과정에서 생긴 두려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성격발달 5단계>에서 3세 정도의 아이들이 스스로 걷고 뛰고 배변을 조절하게 되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전능감’의 시기를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1차 반항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 부모의 보호 아래 이러한 ‘과대한 자기(grandiose self)’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이후에 겪게 될 다양한 자아를 통합하여 현실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시기의 감정을 부모가 충분히 수용해주지 못하는 경우 감정표현에 서투른 어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누려야 할 전능적 통제감(omnipotent control)을 억누르면, 오히려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어른이 되어 충동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수 있습니다.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억눌리면 통제받기를 거부하고 저항감이 커지는 것이지요. 내면에 쌓여 있는 만성 불만감이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것인데요. 사소한 일로도 무시당했다는 억울함이 크게 되어 마음의 여유는 온데 간데 없어집니다. 분노와 복수심이 당당히(?) 고개를 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분노의 실체는 두려움입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두려움에 마음껏 전능감을 뽐내지 못한 마음이 늘 불만과 분노로 잠재돼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와 운전자를 동일 시 하는 심리

인공지능 AI가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자동차와 같은 기계에 인간의 마음이 투사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미국의 클리포드 나스와 코리나 옌은 저서 <관계의 본심> 에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마음이 사람 뿐 아니라 인간이 친숙하게 다루는 기계나 컴퓨터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합니다. 2009년 EBS에서 방영된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 편에서 작은 경차와 고급 승용차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두 차를 모두 적색 신호에 맞춰 멈춘 후 녹색 신호로 바뀐 후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때, 작은 차와 고급 승용차의 뒤에 선 차들이 각각 몇 초 만에 경적을 울릴 것인지 반복해서 알아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실험에서 작은 차 뒤에 선 차들은 1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경적을 울린 데 반해, 고급 승용차 뒤에 선 차들은 한참이 지나도록 경적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차의 뒤에 선 운전자들은 작은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를 작은 차와 동일시해 자신의 무의식적 분노를 경적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인공지능 AI를 실생활에 이용하는 것이 급속하게 빨라지는 만큼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입니다. 기계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상호작용과 보상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를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컴퓨터(CASA: Computers are social actors) 접근법이라고 부릅니다.

보복운전에 대한 심리학 처방

기계를 움직이는 주인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숨겨진 두려움과 분노의 아픔을 외면하면, 기계는 언제라도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램프의 요정이 아닌 오히려 주인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착한 사람의 가면 아래 숨은 아픈 마음을 돌아봐 주지 않는다면 아픔이 분노와 보복으로 변해 나 자신과 타인을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마음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슬픔도 아픔도 두려움도 공포도 분노도 복수심조차도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입니다. 분노를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 충동적인 분노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동적으로 분노를 표출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자신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자신을 원망하고 타인을 원망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깊은 슬픔과 두려움을 돌봐줘야 합니다. 무엇이 두려우셨나요. 공포에 떨고 있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사이렌을 끄려면 억압된 분노의 실체인 두려움을 이제는 위로해 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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