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강산 한 바퀴

겨울의 고요 속, 가까이서 만나는 쉼표 여행지

산과 강, 전통이 만나는 도시
경기 양평

이맘때 양평은 소리보다 침묵이 먼저 다가온다. 강가를 감싸는 물안개와 눈 덮인 정원, 고목의 그림자 아래 스미는 숨결까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이 도시는 잠시 멈춰 서기 위한 이유로 충분하다. 하얀 숨결이 퍼지는 강가에서 시작해, 자연의 정원과 전통의 향기가 어우러진 길 위로, 양평의 겨울은 스산해진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글. 차은서 사진. 남윤중(studio51)

두물머리, 강이 품은 새벽의 정적

하늘과 강이 맞닿은 곳, 두물머리의 새벽은 유독 조용하다. 해가 떠오르기 전 강 위로 자욱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마치 꿈결처럼 흐르고, 나이 든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 모든 장면을 묵묵히 지켜본다. 수면 위를 스치는 찬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는다.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그저 강물 소리에 귀 기울인다. 도시의 소음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겨울은 고요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으로, 그 이름처럼 ‘두 물이 만나는 머리’라는 뜻을 지닌다. 사계절 모두 다른 얼굴을 보여주지만, 겨울의 두물머리는 특별하다. 잔잔한 물결 위에 내려앉은 눈, 그리고 그 위로 번지는 은빛 안개.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순수한 풍경이 여기 있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강 위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세상이 조금씩 밝아온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언 강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오리들의 날갯짓까지. 그 모든 것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진다. 두물머리는 그렇게, 고요 속의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깨운다.

두물머리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 지하철 경의중앙선 양수역 하차 후 도보 약 30분
  • 두물머리제5공용주차장 무료

세미원, 자연이 그린 겨울의 정원

두물머리와 이어지는 세미원은 ‘물과 꽃의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자연이 그려낸 평화로운 풍경이 가득한 곳이다. 여름에는 연꽃으로 가득하지만, 겨울의 세미원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눈이 내린 정원 위로 바람이 스치면, 마른 연잎 사이로 은은한 소리가 퍼진다. 연못 위를 덮은 눈은 얼음빛으로 반짝이고, 고요한 수목들은 하얀 숨결을 품은 채 겨울을 견딘다. 그 풍경은 차갑지만, 그 안에 깃든 생명의 기운은 여전히 따뜻하다.

세미원은 단순한 식물원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생태 정원이다. 물이 깨끗하면 마음도 맑아진다는 뜻처럼, 곳곳에서 물길이 이어지고 수생식물이 자라난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눈 내린 정원을 배경으로 예술 작품처럼 놓인 정자와 연못이 시선을 끈다. 연잎 위로 작은 다리를 건너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고요한 물 위에 비친 하늘빛이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진다. 겨울의 세미원은 비록 꽃이 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잠시 멈춘 듯한 이 정원은, ‘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세미원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 기준)
  • 성인 7,000원, 5세 이하 무료
  • 양평공영주차장(용담제1주차장) 무료

지평향교, 선비의 숨결이 머무는 곳

양평의 겨울 여정이 마무리되는 곳, 지평향교에 이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기와지붕이 가지런히 이어지고, 붉은 대문 너머로 선비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지방 교육의 중심이었던 향교는 학문과 예절을 가르치던 공간이었고, 지금은 그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겨울철의 향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간 여행지다. 고요한 돌계단을 오르면, 세월의 결이 배어 있는 나무 문짝과 단청의 색이 눈 속에서도 은은하게 살아난다.

지평향교는 오랜 세월에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향교 앞마당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치 수호신처럼 서 있다. 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지만, 겨울의 향교는 그 어떤 계절보다 단정하고 아름답다. 마당 한켠의 툇마루에 앉으면 매서운 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겨울의 적막을 깨운다. 그 속에서 문득 ‘쉼’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선비들의 숨결이 머물던 공간, 고요한 학문의 자취는 여전히 이곳에서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르고 있다.

지평향교
  • 경기 양평군 지평면 지평로 333
  • 1983년 9월 19일(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제20호)
  • 상시 개방, 무료 관람 가능
  • 지평향교 입구 공영주차장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