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밝히는 불빛 燈

또 하나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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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기 위해 걷고, 쓴다

글. 이아름(자유기고가) / 사진. 윤상영
미대생, 문예 등단의 길에 오르다
‘수상금 3만 원’이 절실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당시 3만 원은 마지막 학기 등록금 절반을 메울 수 있는 액수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골머리를 앓던 강석경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결국 소설 <빨간 넥타이>로 단편 부분에서 수상했다. 이대학보사 추계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이어령 교수는 그녀를 문학사상 제1회 신인으로 등단시켰다.
미대 조소과를 나온 강석경(67)은 1974년, 그렇게 작가가 됐다.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 ‘공개 습작’을 하던 신인시절을 지나 스물아홉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리라 다짐했다. ‘글을 못 쓰면 자살하리라.’ 사생결단을 내리겠다며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있던 때였다. 강석경은 그때 그녀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파산 이후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어요. 덕분에 제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함을 알게 됐어요. 결국 이런 고민들이 글을 쓸 수 있게 했지요. 글쓰기의 첫 단계는 나에 대한 탐구거든요. 자신의 지나간 체험을 곱씹고 질문하는 과정이 곧 글이 돼요.”
글, 내 삶의 화두를 담는 일
누구나 자신만의 화두가 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혹은 스스로를 자주 괴롭히는 문제 등이다. 원한다고 떼어낼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소설가들은 그 화두를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흐름에 풀어낸다. 동시대를 호흡하는 독자에게 화두를 던지고 교감 한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큰 묘미. 강석경은 작가로 보내는 한평생 예술가의 삶에 대해, 우리의 삶을 둘러싼 제도에 대해 고민했다. 소설<신성한 봄> (2012)은 이 두 화두를 함께 녹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중요하다고 꼽는 작품 중 하나다. 동리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소설만큼이나 에세이가 소중하다. 에세이 <능으로 가는 길>(2000)에는 그녀가 본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준 경주의 구석구석을 담았다.
“경주는 저에게 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요. 1984년에 처음 경주에 들렀다 한눈에 압도됐어요. 도심 한가운데 솟아있는 고분들이 철학적 명제를 던지더라고요. 근원적이고 인류학적이어서요. 지금 우리생활이나 관습에는 조선시대의 유교 관념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잖아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진한 불상이나 토우 등 우리의 자유로운 본성을 그대로 표현한 유물들이 많아요. 유목민의 문화도 섞여 있지요. 자유로운 파격도 있고요.
그래서 신라 문화에 동질감을 느껴요. 경주는 내 영혼의 고향인 셈이에요.”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강석경은 자주 밖으로 나가 주변 경치를 즐기며 걷고 또 걷는다. 경주 그리고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을 걸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만날 방법을 묻자 ‘그저 일상에서 훌쩍 떠나 걸어보라’고 말하는 그녀다. “서른아홉 살에 인도여행을 떠났어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방법을 알게 됐죠. 물을 긷는 여인,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나무. 제 모습이 강가의 풀한 포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강가를 화장터로 사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더라고요. 경주 황룡사지 근처 역시 제가 걷기 좋아하는 곳 중 하나에요. 가만히 앉아 터를 바라보며 상상에 빠지곤 해요. 신라인들의 불경 외우는 소리, 몽골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요. 터밖에 남지 않은 그 곳에 서 있노라면 제 현재는 역사의 긴 흐름 속 하나의 점임을 다시 한번 느껴요. 빠른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채우고, 늘리려고만 하면 우리 고유의 심성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니까요.”
걷고, 바라보고, 사랑하며, 쓰다
강석경은 ‘천연스러운 느림’을 사랑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천연스러움에는 비어있는 것들이 많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도 포함이다. 고독할 시간이 있어야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탐구할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도,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사색이 필수다. ‘비어있음’이 주는 사색의 시간은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비우기 위해 글을 써요. 글로 제 생각을 정리하면서 머릿속을 비워내는 것이죠. 비워야 또 채울 수 있잖아요. 제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같아요. 오롯이 걷는 데 집중하며 몸을 이완하면 몸과 마음이비워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녀는 요즘도 비우기에 열중이다. 도로교통공단본부가 위치한 강원도 원주에서다. 올해 봄 내내 토지문화관에서 내년 출간을 목표로 단편집을 집필하고 있다. ‘이번 봄을 원주에서 보낼 수 있어 너무 기뻤다’고. 매화, 살구, 복숭아꽃이 만발한 천국 같은 곳에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글 이야기밖에 할 게 없다’며 웃는다. 작업 중인 소설집의 제목을 <툰드라>로 정한 것은 수만 년간 끝없이 툰트라를 지나간 순록들의 이미지에 있다. 고난을 거치며 이어가는 우리의 생. “소설 작업이 결코 만만치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쉼없이 화두를 추구한다는 점이 최고의 마력이죠. 자기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창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은 결국 쓰게 되니까요. 저는 문학과 예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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