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땅을
하나로 연결한 레일
철도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의 도로는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의 길은 마차가 다니기에 너무 좁았고, 비라도 내리면 도랑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이처럼 열악한 도로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가로막던 상황에서 철도는 모든 경계를 단숨에 가로지르는 혁신적인 길이었다.
- 인류 최초의 레일을 찾아서
거친 땅에 레일(rail)이 깔리고 무거운 쇳덩이가 굉음을 내며 도시와 도시 사이를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기기관차는 19세기에 개발되었지만 사실 밑에 깔린 레일은 그보다 훨씬 앞서 활용되었다. 연구자들은 레일 시스템의 출발점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 과정에서 찾는다. 이집트인들은 먼저 나일강의 뗏목을 이용해 거대한 돌을 날랐고, 강에서 건설현장까지는 나무로 만든 썰매를 이용했다. 이때 썰매가 잘 움직이도록 나일강의 진흙을 썰매가 다니는 길에 발랐는데, 아무리 땅을 잘 다져놓아도 엄청난 돌의 무게가 썰매를 짓눌렀다. 그런 과정에서 진흙 길은 자연스럽게 음각 형태의 레일이 되었다. 한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레일은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 코린토스 해협에 설치된 것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수레가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길 위에 홈을 파냈 고, 그 위에 넓고 평평한 수레를 놓아서 배를 옮기는 데 활용하였다. 코린토스 해협에 막혀 있는 약 6km의 육지를 통과하면 항로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레일이 무려 6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효과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일의 본질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위에는 언제나 두 가지 측면이
나란히 질주한다.
바로 ‘안전’과 ‘안주’라는 두 개의 바퀴다.
- 광산에서 사용된 레일
레일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곳은 광산이었다. 광산 내부에 레일을 깔고그 위에서 운반차를 밀면 많은 광물을 훨씬 편하게 옮길 수 있었다. 독일의 한 대성당에는 레일과 수레의 모습을 새겨 넣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대략 135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약 200년뒤 독일의 아그리콜라가 레일과 수레를 활용해 광물을 효율적으로 나르는 방법을 소개했고, 이 아이디어는 유럽의 주요 광산에서 널리 사용되 었다. 어두운 갱도 안에 나무로 된 레일을 놓은 뒤 수레로 석탄이나 광석을 옮기는 모습은 16세기 유럽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충격과 습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18세기 무렵에는 철로 만든 레일과 바퀴가 사용되었고, 이로써 무거운 화물을 보다 빠르게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석탄과 철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철도는 거대한 산업으로서 확산될 수 있었다. 레일 위를 달리는 마차는 영국의 스완지-멀블스 구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철도는 1806년 광산과 채석장에서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그 이듬해부터 요금을 받고 승객도 운송하기 시작했다. 한 칸으로 된 마차는 1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는데, 스완지의 해변을 따라 달리며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준 덕분에 승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레일의 본질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위에는 언제나 두 가지 측면이 나란히 질주한다. 바로 ‘안전’과 ‘안주’라는 두 개의 바퀴다. 철도는 정해진 궤도를 달리기 때문에 빠르고 안전하지만 그로 인한 폐쇄적인 구조 역시 피할 수 없다. 레일 위에서는 앞서 가는 열차를 절대 추월할 수 없다. 그리고 늘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열차는 레일 바깥의 길을 상상할 수 없다. 레일은 안주와 모험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며, 인생의 길에 대한 은유 이기도 하다. 이미 깔려진 레일 위를 안전하게 달릴 것인지 거친 들판 위를 자유롭게 달릴 것인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삶이든 자신만의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