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된 1700개 섬의 군락
베트남 하롱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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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운 하롱베이의 섬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웅크려 있다. 열도 사이로 해가 솟으면, 고깔모자(농) 쓴 아낙네의 나룻배가 물안개 속 바다를 가로지른다. 유람선 창문 아래로는 낯선 배 한척이 서성거린다. 배 안에는 과일이며 해산물, 과자들이 담겨 있다. 하롱베이 주민들과 이방인과의 만남은 새벽녘 뜻밖의 소통으로 채워진다. 세월이 흐르며 주고받는 내용물이 바뀌었더라도 대형 유람선과 나룻배가 교감하는 아침 풍경은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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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하롱베이는 1,7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희귀한 석회암 바위들이 도열한 열도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고,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도 선정됐다. 세계유산의 등재 사유를 살펴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세계 자연유산 어느 곳에서도 하롱베이와 유사한 지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자들은 봉우리들이 현란하게 솟은 중국 계림과 견주기도 하지만 두 지역은 배경과 아웃라인이 다르다. 하롱베이 바다의 총넓이는 1,553㎢에 달한다. 초록과 회색으로 덧칠해진 섬 중 900여 개는 각각 고유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자연과 동물의 이름을 빌려 원주민들은 섬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롱베이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언뜻 보면 섬들이 모양새는 구불구불한 용의 등을 닮았다.
100m 높이까지 치솟은 섬들은 대부분 깎아지른 벼랑을 지녔다. 섬의 길이보다는 높이가 훨씬 도드라진다. 배 위에서 바라보면 섬을 에돌아 서야 새로운 섬이 모습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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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나룻배를 저어 생계를 꾸리는 여성 뱃사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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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유람선과 나룻배가 교감하는 아침 풍경은 인상 깊은 장면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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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그대로인데 섬에 대한 인간의 서툰 접근은 편견을 만들어냈다.
겉을 훑는 짧은 여행 대신 그 안에 머물며 찬찬히 들여다볼 때 하롱베이는 값어치를 더한다. 하롱베이 투어 때는 대형 크루즈에서 몸을 내려 수상마을을 방문해본다. 눈높이를 맞추면 깊은 세상이 다가선다. 절벽만이 즐비한 ‘V’자 모양의 카르스트 지형은 섬 위의 삶터를 허락하지 않았다.
섬과 섬 사이에는 대신 수상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벙비엥, 콩담, 쿠아반 등은 이곳을 대표하는 수상마을들이다. 수상마을 주민들은 낚시를 하거나 굴 양식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곳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는 1,000여 종에 달한다. 최근에는 하롱베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삶의 주요 터전이 되고 있다.
벙비엥 수상마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수상마을이다. 이곳에는 50 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산다. 그물을 널어놓은 집 안으로 들어서면 TV도 있고, 개도 컹컹 짖는다. 일상의 단상은 여느 시골 마을 풍경과 닮았다. 섬들 사이 수상 가옥을 나룻배로 만나는 것은 달콤한 하롱 베이 유람의 시작이다. 거친 엔진 소리 대신 삐거덕거리는 노 젓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고깔모자인 ‘농’을 쓴 뱃사공들의 미소가 눈가에 부서 진다. 베네치아 곤돌라의 여성 곤돌리에가 등장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하롱베이에서는 여성 뱃사공들을 흔하게 만난다. 노 젓는 솜씨또한 베테랑이다.
벙비엥 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만나는 하롱베이의 비경은 탄성을 자아 낸다. 담소를 나누던 구경꾼들도 자연스럽게 입을 닫고 눈을 연다. 고요한 정적이 작은 동굴 사이에 드러난 섬들 위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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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섬들 사이에는 수상가옥이 모인 동네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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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수상가옥 주민들은 낚시와 양식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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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를 더욱 이채롭게 단장하는 것은 곳곳에 들어선 석회암 동굴들 이다. 이곳에서 동굴투어에 나서는 것은 필수 코스다. 탐쿵, 메쿵, 송솟 등하롱베이를 대표하는 동굴들은 입구는 숲에 가려 협소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가 시원스럽다. 동굴들은 전쟁과 자연재해 때 피난처와 삶터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중 송솟 동굴은 거대한 동굴 내부와 동굴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탐스럽다. 동굴 안은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거대한 광장과 종유석, 석순 등으로 치장돼 있다. 송솟 동굴의 별칭이 ‘놀 람의 동굴’인데 섬 하나에 웅대한 동굴이 온전히 똬리 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매혹의 하롱베이를 영화 관계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하롱베이는 영화 ‘인도차이나’, ‘굿모닝 베트남’의 주요 배경이었다.
배 위에서 진행되는 하루의 일과는 하롱베이 투어의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예전 하롱베이를 채웠던 목선 대신 최근에는 고급 크루즈 선박들이 유랑한다. 해 뜰 무렵이면 베트남 전통 무예 ‘비엣보다우’의 시연이나, 해질 녘 진행되는 오징어잡이와 베트남 전통음식을 배우는 과정도 쏠쏠한 재미다. 하롱베이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다면 구명조끼 하나 받아들고 물에 뛰어들면 된다. 이곳 바다는 호수만큼 잔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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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하노이 관광의 필수 코스인 호치민 유적지

0606.하롱베이는 고요히 노을 저어 섬들 깊숙이 다가설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0707.대형 광장을 연상시키는 송솟 동굴 내부

0808.호치민 유적으로 이어지는 도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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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로 향하는 관문은 수도 하노이다. 차창밖에 시선을 고정하면 바다 위 향연과는 다른 도시의 일상이 군더더기 없이 펼쳐진다. 벌떼같이 이동하는 모터사이클과 입을 달달하게 만드는 길거리 음식을 만나는 곳도 하노이다.
최근 북미회담이 열려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하노이는 천년 수도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다.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의 삶터, 공자와 그의 제자를 기리기 위해 천 년 전 세워진 문묘를 방문하는 것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기념 관, 주석궁 등이 들어선 호치민의 유적은 근엄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도 유원지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묘 앞은 졸업사진을 찍으려면 학생들이 단골로 찾는 명소다. 하노이에서는 50여 개의 테마 거리가 밀집한 구시 가를 거닐거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호안끼엠 호수 일대를 씨클로를 타고 둘러보는 여유에 젖어 본다. 성 요셉 대성당과 오페라 하우스 등 프랑 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의 옛 흔적 역시 눈을 즐겁게 한다. 저녁에 그윽한 프랑스식 정식을 탐한다면 낮 한 끼쯤은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베트남 쌀국수 ‘퍼’와 빙수 ‘째’를 맛보는 것도 이곳 여행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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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베트남 전통 고깔모자인 ‘농’으로 만든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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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뒤엉킨 하노이 도심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