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신호등이 없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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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달려 찾은 곳
선비의 멋이 깃든 논산

글·사진. 임수아(여행작가)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선생 고택
노성면을 에둘러 싼 23번 국도를 따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대단위 비닐하우스 단지가 스쳐 지나간다. 논산은 우리나라 최대 딸기 산지로써 재배역사가 50년 이상 되었다. 오는 4월에는 딸기축제가 열린다. 상큼한 딸기 맛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명재고택에 다다른다.
아파트 숲으로 대변되는 도시에서의 삶은 극도의 편리함을 주었다.
허나 잿빛 콘크리트를 걸어 통학하는 아이들과 콘크리트 빌딩정글로 출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는 여유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고택의 여유와 운치를 찾아가는 과거 회귀적 여행이 더욱 의미가 있다.
명재고택은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의 집이다. 윤증은 조정으로부터 열여덟 차례나 부름을 받았지만 모두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인물이다. 말년에는 우의정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평생 벼슬길을 마다하고 지역에 남아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명재고택은 그의 둘째 아들과 제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지었지만 선생은 이 또한 거절한 채 근처 초가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대쪽 같은 성품으로 평생을 살아온 선생답다. 명재고택은 자연을 안팎으로 품어내는 선비의 멋과 여유가 깃들어 있다. 노성산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과 맞닿은 처마의 곡선은 날아갈 듯 가볍다. 고택 주변의 나무들 역시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뽐낸다.
봄에는 그윽한 향을 풍기며 매화가 소담스럽게 피어나고, 여름에는 피를 토하듯 붉은 백일홍이 피어난다. 가을 역시 은행잎이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며 별천지를 만든다. 그 중에서 으뜸은 함박눈 내린 겨울일 것이다.
역시나 간밤에 내린 눈은 기와를 솜이불로 덮어 놓은 듯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은 영롱한 보석을 닮았다. 거기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수많은 장독대의 질서정연한 모습과 고택의 조화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명재고택의 안채는 ‘ㄷ’자 형태로 밖에서는 안채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안채에서는 바깥이 잘 보인다. 사대부 집안에서 여성을 배려한 구조라 할 수 있다. 전면에 보이는 사랑채 앞에는 담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는 집주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특히 명재고택 사랑채 누마루의 창문은 매우 독특하다. 누마루의 창문은 4분합 들문이다. 창문을 들어 처마 걸쇠에 걸면 1대 1.618의 이상적인 황금비율 창이 돼 정원을 내다볼 수 있다. 선비들은 창밖으로 사시사철 다른 풍경을 보며 세상과 소통했으리라.
조선 명문사학 종학당
명재고택과 4km 거리에 파평 윤씨의 문중 교육기관인 종학당이 있다.
윤선거가 1643년에 설립해 초대 사장(師長)을 맡았고, 아들 윤증이 대를 이었다. 교육 대상은 자녀와 문중의 친척, 처가의 자녀까지였다.
운영방식은 요즘 기숙학원과 같은 합숙교육으로 이뤄졌다. 파평 윤씨 자녀 가운데 42명이 과거급제 영광을 맛봤다.
구 오른쪽에 초등교육을 담당했던 종학당이 있다. 마루에는 먼지가 소복하다. 한옥은 하루만 손길이 멈춰도 먼지가 주인 행세를 하니 관리인의 고초가 여간 크지 않을 듯하다. 길을 따라 동정호를 연상시키는 연못과 정수루, 백록당이 줄지어 서있다. 백록당은 고등교육의 산실이다.
볕 좋은 날, 학생들이 정수루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글을 읽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십 명이 함께 글을 읽으면 그 소리가 하늘높이 올라가 논산을 잔잔히 뒤덮지 않았을까. 관직 진출을 위한 족집게 교육보다 인간의 도리와 이치를 토론하는 장이 되었을 거다. 윤증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기둥마다 배여 있을 것 같아 매만지는 손길도 조심스럽다.
강론과 토론의 장, 서원
논산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호학파의 본산지다. 논산은 그 중심지로서 10여 개의 서원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돈암서원, 노강서원, 죽림서원은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김장생, 송시열, 윤선거, 윤증 등이 선현을 배향하고 학문을 강론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당시 공교육을 담당하던 향교가 있었음에도 사교육 기관인 서원이 생긴 이유는 두 차례 전란과 사화를 겪으면서 나름의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명재고택과 종학당이 있는 노성면에는 파평 윤씨의 계보를 잇는 서원이 있다. 바로 소론의 거두인 윤황·윤선거·윤증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노강서원이다. 1682년 숙종에게 ‘노강’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1864년)이 내려졌을 때도 훼철되지 않은 의미 있는 곳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원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규모를 능가한다.
노강서원을 뒤로하고 643번 지방도에서 1번 국도를 갈아타고 달린다.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어 다음 목적지인 돈암서원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돈암서원은 김장생과 송시열을 배향하는 노론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원래 서원이 있던 자리는 연산면 숲말산 기슭이었다. 그곳에 있던 돈암(돼지바위)에서 서원 이름을 따왔지만 차마 서원이름에 돼지 돈(豚)을 쓸 수 없어, 물러날 둔(遯)자를 사용했다. 그 결과 현판에는 둔암서원(遯巖書院)이라 쓰였다. 하지만 여전히 돈암서원으로 불린다. 서원에 들어서면 ‘응도당’이 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큰 까닭이다.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중앙에는 ‘양성당’이 그 왼쪽에는 서책을 인쇄하던 ‘장판각’이 있다. 이 또한 흔하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돈암서원의 규모를 가늠하게 한다.
조선시대 장군의 집에서 하룻밤
하루의 마감을 한옥에서 하기위해 백일헌 이삼장군 고택을 찾았다. 키를 가늠하기 어려운 은행나무가 솟을대문을 내려다본다. 고택의 주인이었던 이삼 장군이 생전에 말을 매어두던 나무란다. 대문을 지나면 사랑채와 건넌방이 높은 계단 위에 세워졌다. 흔치않은 구조다.
특히 건넌방 앞에 있는 담은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루에서는 마당과 마을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생활을 보호는 물론 성곽의 망루기능까지 해 보인다. 역시 무관의 집답다.
장군은 윤증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문무에 모두 능한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노론이 득세하던 시절, 영조가 소론계 인사인 장군에게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게 한 것도 그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장군은 난을 평정하고 그 공으로 임금에게 이 집을 하사받았다. 장군의 집이라서 그런지 강직하고 남성적이다. 안채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ㅁ’자처럼 보이지만 ‘ㄷ’자형 집이다. 사랑채가 연결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벽채마다 군불향이 배였다. 사람의 향기고 시간의 향기다.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한옥은 잠들 때보다 잠을 깰 때가 더 좋다. 새소리가 아침을 열고 햇살이 창을 두드리니 기분 좋은 기상이 가능하다. 찻잔을 기울이며 한옥의 정취에 빠져본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한 주간을 버텨낼 수 있는 자양제가 된 것 같다. 선비의 고고한 멋이 깃든 논산에 오길 참 잘했다.

TIP.

내비게이션 정보

명재고택(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041-735-1215) →
종학당(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
노강서원(충남 논산시 광석면 오강길 56-5) →
돈암서원(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041-736-0096)

잠자기 좋은곳

백일헌종택(041-736-4166)에서 한옥체험이 가능하다.
레이크힐호텔(041-742-8851)은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탑정호가 내려다 보여 전망이 일품이다.

지역별미

탑정호는 물이 맑고 깨끗해서 잉어 등 담수어족이 풍부하다.
호수주변에 붕어찜 전문점이 많다.

함께 돌아보면 좋은곳

현재 논산의 딸기밭은 여의도 면적과 맞먹는 821ha에 이른다.
연간 3만여 톤을 생산해 전국 딸기 생산량의 15%를 차지한다.
현지농민들은 기름진 농토, 풍부한 일조량, 맑은 물이 청정딸기의 재배조건이라 자랑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당도가 높고 육질이 단단해 일본까지 수출하고 있다. 딸기 수확 시기를 맞춰 딸기수확체험도 겸한다.

문의

논산 종합관광안내소 (041-746-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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