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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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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아시아가 뒤엉킨 '소통의 도시'
터키 이스탄불

글. 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바닷가 언덕위에 웅크린 이스탄불의 단상은 가까이 다가서거나, 한 발 물러서 볼 때 영감이 다르다. 해질녘 술탄 아흐멧 자미(블루 모스크)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도 굳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르는 유람선에 몸을 의지하는 것도 색다르게 투영되는 이스탄불에 취하기 위해서다. 푸른 바다 옆 근엄한 도시는 성채같은 몸을 온종일 들썩거린다.
이스탄불은 대륙간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라는 수식어는 지구상에 단 한 곳, 이스탄불에만 허용되는 말이다. 터키의 큰 땅 덩어리는 대부분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본토 서북부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기준으로 중심가 대부분이 유럽과 닿아 있다.
예전 런던을 출발했던 오리엔트 급행은 이스탄불의 시르케 지역이 종착역이었다. 유럽 상류층 사람들이 붐비던 역으로, 저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는 시르케 지역을 오가며 이스탄불의 한 호텔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이라는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다.
골드혼 바다 건너 출퇴근하는 주민들

갈라타 다리는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

7개의 언덕과 모스크로 단장된 구시가와 청춘들이 활보하는 신시가의 경계는 골드혼(금각만)이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골드혼 주변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다리 옆 부두 주변에는 여객선과 대형 버스 정거장이 마련돼 있고 환승하려는 출퇴근족을 위한 시장도 들어서 있다.
갈라타 다리는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하며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다리 밑으로는 해산물 카페들이 부교 위에 늘어서 있고, 다리 위는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의 세상이다. 평일에도 낚싯대들이 끊임없이 도열한 풍경에서 이스탄불의 여유로운 호흡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잡힌 생선들은 즉석에서 레스토랑 식탁 위에 오르기도 한다.
모스크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으로 구시가 여행은 발걸음을 뗀다.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이 기독교 문명의 흔적이 서린 비잔틴 제국의 땅이었음을 반증하고, 술탄 아흐멧 자미는 천만 인구의 이스탄불이 회교도의 도시임을 보여준다.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 아야소피아에 들어서면 구릿빛 성화들이 벽속에서 숨을 쉰다. 1,500년 세월을 넘어선 대성당은 1453년 술탄 마흐메트 2세에 의해 회교도식 모스크로 한때 역할이 바뀌었다.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화도 300여 년간 덧칠에 가려 있다가 20세기가 지나서야 빛을 봤다. 아야소피아와 천년의 세월을 두고 마주한 술탄 아흐멧 자미는 그 규모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6개의 푸른 첨탑이 우뚝 솟아 블루모스크로도 불리는데 내부는 기도와 사색의 공간으로 채워진다.


  1. 이스탄불 이슬람 건축의 상징인 술탄 아흐멧 자미 (블루 모스크)
  2. 신시가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갈라타 타워
  3. 모스크 지붕 사이로 드리워진 이스탄불과 골드혼 정경
모스크, 바자르, 궁전이 공존하다

오스만 시대 술탄(왕)의 흔적

에미뇌뉘 부두 옆 예니 자미(뉴 모스크)는 현지주민과 이방인들이 한데 뒤엉키는 공간이다. 포구에서 파는 고등어 생선구이 빵가게는 이곳 예니자미 광장의 익숙한 풍경이다.
\ 바자르의 독특한 향취는 예니 자미 옆 향료 시장인 이집션 바자르에서 강렬하다. 지역 주민들을 상대하기에 바가지가 심하지 않고 사람 냄새 나는 시장 정경도 엿볼 수 있다. 의자에 걸터앉아 신문 한 장 들고 차이 한잔 마시는 시장 할아버지의 주름조차 정겹다. 그랜드 바자르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된 곳으로 3,300여개의 상점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바자르를 기점으로 입구도 곳곳에 뚫려 있어 미로에 들어섰다가 길을 잃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3대륙을 거느렸던 오스만 시대 술탄의 흔적은 토프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에 서려 있다. 식수 저장고였다는 지하궁전 ‘예레바탄 사라이’는 메두사 동상과 음산한 지하카페가 인상적이다. 노천 박물관같은 구시가 전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갈라타 다리를 지나 신시가지쪽으로 향하면 분주한 이스티크랄 거리로 이어진다. 신식 건물들 사이로 카페, 명품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오래된 붉은색 노면 전차가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전차는 인파로 빼곡한 골목 한가운데를 도시의 변화상처럼 더딘 속도로 오간다. 신형 노면전차가 모스크로 장식된 구시가지를 달리고 구형 전차가 신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전차가 다니는 골목길 뒤편으로는 노천바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청춘들은 터키맥주인 에페스나 물을 타 마시는 터키식 진토닉 ’라크‘를 즐기며 이스탄불의 밤을 향유한다. 바와 클럽으로 불을 밝히는 이스티크랄 길목 끝, 탁심광장에는 그윽한 꽃시장이 형성돼 도시의 향기를 더한다.
오스만 제국의 과거가 담긴 길과 삶

도시 곳곳에서 엿보는 터키인의 일상

이스탄불을 벗어나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터키의 과거를 간직한 소도시와 만난다. 불가리아, 그리스로 넘어서는 접경에 위치한 에디르네는 이스탄불 이전 오스만튀르크의 도읍이었던 배경을 간직한 곳이다. 지평선 따라 이스탄불에서 연결되는 도로는 비잔틴제국과 오스만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사연이 녹아들었다. 마르마라해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은 숲과 평원이 새벽 여명에 젖어 차창 밖으로 흐른다.
회색빛 도시 에디르네는 도드라진 건축미로 오스만튀르크의 과거를 강변한다. 이슬람 건축의 거장인 미마르 시난의 건축물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세계유산인 셀레미예 자미 외에도 시장, 하맘(목욕탕), 다리 등 일상의 공간까지 천재 건축가의 손길이 닿았다. 그 흔적을 따라 거니는 길에 조우하는 사람들은 수더분한 터키주민의 모습이다. 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주고받는 목소리는 낮고 평온하다. 크고 작은 도시 곳곳에서 엿보는 터키인의 일상은 왜 이곳이 여행자들의 천국인가를 실감하도록 해준다. 찜질방의 원조격인 터키식 목욕탕 하맘도 최근 세태를 반영하듯 남성, 여성 전용이 따로 마련돼 있다.
하맘에서는 옷을 훌렁 벗지 않고 수건으로 은밀한 부위를 가리거나 수영복을 입고 있기도 하는데 찜질 후에는 때도 밀어준다.
세계 3대 음식으로 꼽히는 터키 음식을 맛보는 것 역시 색다른 체험이다.
길거리 상점에서 쓱쓱 썰어주는 되네르 케밥 외에도 요구르트가 곁들여진 쇠고기 요리인 이스켄데르 케밥, 감자로 만든 쿰피르 등이 별미다. 식후에 터키 커피를 마신뒤 남은 찌꺼기로 운세를 점치는 낯선 경험도 흥미롭다.
터키 유랑의 대미는 흑해와 에게해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다. 골드혼과 보스포러스 해협이 만나는 뱃길에 접어들면 모스크 너머로 해가 지고 어부들은 석양의 바다에 그물을 던진다.
수천년 세월을 간직한 도시가 품에 안은 사연들도 묵묵히 바다 위를 부유한다.


  1. 도시를 가로지르는 추억의 노면전차
  2. 갈라타 타워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벽화 골목

TIP BOX

보 행 자 거 리 를 가 로 지 르 는 ‘ 추 억 의 전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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