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노마드로서의 첫걸음,
울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러한 바람은 여행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캠핑카는 달팽이처럼 숙식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싣고 이동하는 여행이다.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머무르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는, 캠핑카는 현대인들의 노마드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시작으로 울산을 찾았다.
글/사진. 여행작가 임운석(「여행의 로망, 캠핑카 스토리」 저자)
캠핑의 백미라 꼽히는 대왕암공원 캠핑장
데뷔 21주년을 맞은 1세대 아이돌 ‘핑클’, 그녀들의 특별한 캠핑 여행을 담은 <캠핑클럽>이 지난해 인기를 끌었다. 그녀들은 캠핑카를 타고 이동했고, 생활했다. 뒤엉켜 잠을 자고, 요리 하고, 화장실 볼일까지 보면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들은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모습에 놀라워했고, 때론 웃고 울기도 했다.여행은 그 어떤 명약보다 마음을 위로한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는 캠핑카 여행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루 이틀은 티격태격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어깨를 감싸 안는다. 지난해 국내 캠핑 시장규모가 2조 원을 넘어섰다. 핑클도 그에 한몫했을 것이다. 일반 캠핑이 지정된 캠핑장에서만 생활한다면 캠핑카는 캠핑 자체뿐만 아니라 여행의 묘미를 두루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여행지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캠핑의 재미에 푹 빠지는, 그야말로 유목민처럼 여행하는 것이 캠핑카 여행이다.
첫 캠핑카 여행지는 대왕암공원 캠핑장이 있는 울산이다. 대왕 암공원 캠핑장은 사이트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시설이 좋은 것은 두말할 것 없고, 울산에서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게다가 캠핑카가 없는 여행자를 위해 캠핑 카라반을 대여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사실상 캠핑카는 저렴한 트레일러의 경우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며 일체형인 경우엔 1억 원에 가깝다. 이런 가격 장벽 탓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설령 큰돈을 들여 구매 한다손 치더라도 1년에 이용하는 횟수는 기껏해야 며칠 되지 않으니 대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대왕암공원 캠핑장은 지난 2016년 12월 문을 열었다. 오토캠핑 36면, 카라반 17면 총 53면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외에 샤워장, 세척장, 화장실, 쉼터 등 편의시설이 다양하다. 또한 대왕암, 울기등대 등 가까운 곳에 여행지가 집결되어 있어 캠핑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넉넉한 규모를 자랑하는 카라반에는 주거에 필요한 모든 비품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카라반 실내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동해의 풍광은 대왕암공원 캠핑장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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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왕암공원 캠핑장은 동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즐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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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시설이 우수한 대왕암공원캠핑장의 카라반
그 길에 서면 걷는 맛이 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그 대상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이 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내가 사는 나라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 통일 이후 혼란에 빠진 신라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왕으로 추앙받는다. 그의 나라 사랑은 ‘죽어서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노라’ 유언할 정도로 각별했다. 사후에 왕의 유언에 따라 바다에 장사했고 그 수중릉이 경주에 있는 대왕암이다. 그런데 똑같은 이름의 대왕암이 울산 동구 앞바다에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문무왕비가 문무왕을 따라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려 바다에 무덤을 만들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왕과 왕비의 나라 사랑이 이토록 간절할 수 있다니. 통일신라가 267년간 존속하면서 27명의 왕을 배출한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하다.대왕암공원엔 숲길, 흙길, 판석 길, 세 종류 길이 있다. 자연스 럽게 발걸음은 숲길로 향한다. 숲은 매우 깊고 아득하다.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가 1만 5천여 그루에 달한다. 숲이 그냥 생겼을 리 없다. 러일전쟁 이후 승리한 일본이 해군부대를 주둔 시키면서 군사시설을 은폐할 목적으로 숲을 조성한 것이다. 숲길은 푸르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그렇고 바닥의 꽃무릇 잎사귀가 푸르다. 겨울에 보는 푸름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일까.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숲을 벗어나 흙길을 걷는다. 동백 나무가 울창하다. 품도 어찌나 넓고 우람한지 한마디로 푸지다.
겨울꽃 동백이 활짝 웃으며 얼굴을 내민다. 노오란 수술에선 그윽한 향을 발산한다. 솔숲에서는 색에 취하더니 동백 앞에서는 향에 취한다. 동백 숲길 너머엔 하얀색의 클래식한 등대가 서 있다. 1906년 동해안 최초로 세워진 울기등대(등록문화재 106호)다. 이것 역시 러일전쟁 때 일제가 세운 것이다. 당시에는 33.3km까지 빛을 밝혔으나 주변에 나무가 자라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뒤편에 좀 더 키가 큰 새 등대를 세웠다. 등대를 지나쳐 대왕암에 닿는다. 바다의 것은 모든 게 이전과 다르다. 공기가 숲의 것과 다르고, 바람과 색감이 그리고 조망이 또 다르다. 해안 절벽 뒤로 웅장한 바위가 용트림하듯 누웠다. 바위틈 ‘용추수로’에서 파도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밀려오는 파도를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벼락에 혼비백산하여 쫓겨 간다. 대왕암 주변 산책길을 대왕암 솔바람길이라 부른다. 대왕암공원 캠핑장에서 고동섬전망대를 지나 대왕암공원을 거처 일산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2시간 코스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기암괴석 전시장을 보는 듯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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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바위 틈 ‘용추수로’에서 파도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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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푸른 잎사귀의 꽃무릇이 가득해 계절을 잊게 한다
고래의 꿈을 꾸는 장생포 고래 문화마을
옛날 울산은 고래의 도시였다. 고래잡이가 법으로 금지되면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고래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울산 앞바다를 ‘고래 바다’라는 뜻의 ‘경해(鯨海)’라 부른 것도 울산이 고래와 각별한 인연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대왕암공원과 10km가량 떨어진 장생포는 과거 고래잡이로 호황을 누렸으나 고래잡이가 금지된 이후 잊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8년에 우리나라 유일의 고래 문화 특구로서 장생포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 문화마을이 조성돼 있다. 고래박물관에서는 집채만 한 실물 고래 골격은 물론이고 고래 포획에서 해체, 고래로 만든 요리까지 전시 중이다. 일명 귀신고래라 불리는 녀석은 몸길이가 자그마치 16m에 이른다. 이처럼 큰고래가 장생포항에 들어오면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로 야단법석이었다고 한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살아 있는 고래가 인사하듯 물을 뿜기도 하고 눈을 맞추기도 해 고래를 더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5D 입체영상관에 서는 실제 고래잡이에 나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름 13m, 높이 5m의 360도 대형 원형 스크린과 360도 회전의자가 설치돼 있어 실감 나는 입체영상을 제공한다. 장생포 옛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을 여행도 빼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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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고래문화특구에는 고래마을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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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큰 고래가 장생포항에 들어오면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로 야단법석이었다
울산의 자랑 태화강 국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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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장대비가 내리는 것같은 십리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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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태화루는 '역사와 미래가 있는 태화강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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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은 울산 중심부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간다. 조선 시대에는 은어가 많이 잡혀 왕실에 진상했을 정도로 어획량이 풍부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울산이 공업 도시로 성장하면서 태화강은 서서히 죽어갔다. 악취와 부유물 때문에 코를 막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고, 낚시를 던지면 기형 물고기가 잡혔다. 그랬던 태화강이 지난해 국가 정원으로 지정됐다. 민관이 태화강을 살리겠다고 나선 지 20여 년 만이다. 이제 태화강에는 물고기와 철새가 노닐고 봄부터 가을까지 꽃동산이 펼쳐진다. 이맘때라고 볼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여의도 면적 2.3배에 달하는 십리대숲이 있다.
대숲이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다. 홍수로 태화강이 범람하자 그 일대에 대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어엿한 숲이 된 것은 20년 정도 됐다. 대숲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깊다.
하늘 높이 선 대나무 군락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모양처럼 올곧다. 그 촘촘한 대나무숲을 십 리쯤 걷다 보면 사방이 탁트인 너른 들판이 나온다. 물론 겨울에만 그렇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 대궐로 바뀌니 다른 계절에 다시 찾아볼 일이다. 대숲 끝자락에서 태화강 변을 따라 곧장 걸어가면 황룡연 절벽 위 태화루에 닿는다.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누각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역사와 미래가 있는 태화강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복원했다. 옛 정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이 또한 울산이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바다와 숲이 공존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울산은 노마드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좋은 곳임에 분명하다. -
여행정보
대왕암공원 캠핑장 울산 동구 등대로 100
(☎ 052-209-4530) 장생포 고래박물관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로 244
(☎ 052-256-6301) 장생포 고래 문화마을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로 244
(☎ 052-226-0980) 태화강 국가 정원 울산 중구 태화동 107
(☎ 052-229-7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