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개 불탑, 고산족의 호수와 만나다
미얀마 바간, 인레
미얀마에서 마주하는 단상은 조금 낯설거나 더디다. 오랜 생채기의 황토 사원들은 들판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고, 새벽이면 발로 노를 젓는 고산족이 호수로 나선다. 미얀마의 불교유적인 바간, 소수민족의 삶이 녹아든 인레호수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고혹하다.
융성했던 불교의 진수를 제대로 엿보려면 미얀마 중부 바간으로 향한다. 바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 유적 중 한 곳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사원과 어깨를 견주는 불교성지로 천 년 전 건설된 2500여 개의 탑과 사원들이 거친 땅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다. 11세기 바간 왕조가 들어서면서 전국에는 400만 개가넘는 사원이 건립될 정도로 미얀마의 불교 문화는 번성했다.
누구나 추억하게 되는 바간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세산도 사원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다. 수백 개의 탑 너머로 해가 지는데 장엄한 순간을 맞기 위해 벌룬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방인도 있다. 해넘이로 이어지는 그 시간 만큼은 탑 위에 기대선 사람들은 미동도 말도 없다. 종교, 피부색과 관계없이 얼굴이 발갛게 물들 때까지, 눈가가 젖어들 때까지 뭉클한 감동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바간의 일몰만큼이나 북동부 인레 호수의 아침 단상은 신비롭다. 한발로를 젓는다는 전설 같은 호수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여러 척의 나룻배가 도열한 채 장대로 번갈아 내리치며 물고기를 잡는 장면은 의식을 치르듯 거룩하다.
미얀마의 숨겨진 보물인 인레호수는 해발 880m 고지대에 고즈넉하게 들어선 산정호수다. 길이 22㎞의 호수는 미얀마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호수가 속한 미얀마 동북부의 샨 지방은 라오스 접경에 위치한 고산족들의 오랜 터전이다. 붉은 두건을 머리에 감싸거나 목에 굴렁쇠를 찬 부족과 마주치는 것이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호수 주변에는 샨족, 인따족, 빠우족이 거주하는데 그중 터줏대감은 호수 위에 사는 인따족이다. 인따족들은 수경재배를 하며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그들의 미얀마 이름에는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인레호수가 세간에 알려진 것도 호수에서 태어나 물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생경한 삶 때문이다.
인따족들은 노를 발에 걸어 젓는 특이한 풍습을 지녔다. 호수가 넓어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데 노를 젓는 풍습에는 노인, 아이가 따로 없다. 등교하는 꼬마들도 수로를 따라 한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의 아침을 맞는다.
인따족들은 해 뜰 녘이면 고기를 잡고, 낮에는 수경재배하는 게 주요 일과다. 장대를 물 위에 내려쳐 고기를 잡는 모습은 불경소리와 어우러져 묘한 정적을 만들어낸다. 마을 곁으로는 수상 재배지가 늘어서 있는데 이들은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이용해 밭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뒤 토마토 등 야채를 재배해 자급자족한다. 수상 사원, 수상 시장, 직물공장, 대장간 등 물 위에는 그들만의 군락이 옹기종기 형성돼 있다.
호수 주변의 5일장은 인근에 사는 고산족들이 유일하게 만나는 시끌벅적한 공간이다. 다양한 외관의 부족들은 물과 산에서 난 생선과 곡물, 외부에서 들여온 잡화들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한다. 뙤약볕을 막기 위해 얼굴에 타네카라는 하얀 나뭇가루를 칠한 모습은 이들 여인네들의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
우기를 견뎌낸 호수는 수위가 높아지면 외부와의 통행은 잠시 더뎌진다. 부처를 배에 태우고 수상 가옥을 순회하는 빠웅 도우 축제나 빠우족들의 잔치인 까띠나 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때 쯤이다. 인레 호수 일대는 1~2 월이면 다시 야생화를 피워내며 트레킹 마니아들에게 아득한 산악 마을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미얀마가 불교와 소수민족의 문화로만 채색된 것은 아니다. 도시인의 일상은 미얀마의 관문이자 최대 상업도시인 양곤에 짙게 담겨 있다. 2005년 미얀마의 수도가 산악지대인 네피도로 옮겨지기 전까지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였다.
양곤에서는 미얀마인들에게 성지처럼 여겨지는 쉐라돈 파고다가 있다.
높이 99m에 수천 톤의 실제 황금으로 단장된 쉐라돈 파고다는 미얀마 국민들이 생전에 한 번은 꼭 방문하고 싶어 하는 탑이다. 탑 주변의 풍경은 바간과는 사뭇 다르다. 연인들이 경내에서 데이트도 즐기고 불전 안에서 도시락도 먹고 낮잠도 잔다.
양곤대학교 옆 골든 밸리 지역은 미얀마의 변화상을 대변한다. 대형 저에 명품 숍이 들어선 낯선 모습이다. 반면 양곤강 건너 달라지역은 아직도 60~70년대 낙후된 변두리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얀마 제2 도시인 북쪽 만달레이는 양곤과는 모습이 이질적이다. 길에 나서면 온통 승려들의 세상이다. 아침 공양을 하는 승려, 미니 트럭에 매달려 가는 승려들과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도읍지로 승가대학이 있어 미얀마 스님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마하 간다용 짜용 수도원은 수천 명 스님들이 탁발 공양 행렬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땅덩이는 넓지만 도로교통은 낙후된 편이다. 양곤에서 인레호수까지 이동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고속버스에는 운전기사 2명과 별도의 조수가 함께 탑승한다. 양곤 등 도심에서 마주치는 버스는 한국에서 중고로 넘어 온 것들로 한글 외관을 갖춘 채 운행 중이다.
미얀마 서민들이 애용하는 대중교통은 소형 트럭을 개조해, 화물칸 양쪽에 나무 의자를 놓은 모양새다. 흡사 태국의 ‘썽테우’를 닮았다. 미니 트럭버스 는 손님이 많을 경우 발판 위나 지붕 위에 매달려 가기도 한다. 운전석 옆 조수석은 승려들의 전용좌석이다.
바간 등 유적지에는 ‘밍흘레’로 불리는 마차가 이동수단으로 쓰이며 자전거 옆에 의자가 달린 싸이카 역시 단거리 이동 때 종종 이용된다. 도심 외곽에서는 주유소 대신 기름통과 깔때기를 들고 자동차 연료를 판매하는 장면과 도 맞닥뜨리곤 한다.
미얀마 남자들은 치마처럼 생긴 론지를 즐겨 입는다. 여인들은 하얀 피부를 위해 나무껍질을 맷돌에 갈아서 만든 타네카를 얼굴에 바른다. 이곳 역시 한류 덕분에 한국인들에 대한 인기가 꽤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