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담다
부산을 걷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다.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풍광에 몸도 마음도 스산하다.
하지만 남녘에 자리한 부산은 예외다. 여행한 사람은 안다. 부산은 여름보다 겨울이 제격임을.
마을과 바다 그리고 숲에 담긴 부산의 이야기를 들춰볼 때다.
글·사진. 임수아(여행작가)
한국의 마추픽추를 걷다, 감천문화마을
부산 사하구 천마산 자락이 시끌벅적하다. 비탈진 곳에 자리한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 감천문화마을 때문이다. 좁은 골목에 질서 정연하게 지은 집들과 파스텔 톤으로 덧칠한 독특한 색감, 미로 같이 이어진 가파른 골목. 그야말로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감천문화마을은 시대의 상흔 위에 지어진 부산의 대표적인 산동네다. 원래 신흥종교인 태극도 신자촌으로 조성된 이 마을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까지 몰려들어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판잣집을 지었다. 당시 지은 판잣집만 1천여 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의 집에는 특징이 있다. 집집마다 지붕과 벽을 빨강, 파랑, 초록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한 것이다. 마을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감천고개마루에 있는 버스정류장 뒤편 <하나 되기> 포토존에 서면 감천문화마을의 풍경이 동화마을처럼 펼쳐진다.
마을 여행의 출발지는 새마을금고 분소가 있는 <문화마을 입구>에서다.
공중화장실과 간식 등을 챙길 수 있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포토존을 따라 걷는다. 첫 번째는 <사람과 새> 작품이다. 짙은 원색의 작품이 파스텔색으로 칠한 마을 지붕과 어울린다. 건물 외벽에 골목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벽화도 인상적이다. 작품 제목은 <마주 보다>이다.
빈집을 활용해 만든 <작은 박물관>에는 주민들이 기증한 옛 물건들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옆에는 <하늘마루>라 불리는 전망대가 있다.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옥상에 오르면 용두산을 포함한 부산항,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담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 작품은 규모가 워낙 커서 몇 발짝 떨어져서 감상해야 한다. 골목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마을기업인 감내맛집이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북 카페-흔적>이라는 작품이 보인다. 하얀 건물에 빨간 손잡이를 달아 놓아 마치 건물이 거대한 컵처럼 보인다.
자박자박 걷는 동안 잠시도 쉴 새 없이 아기자기한 미술작품들이 잇댄다. 그덕분에 발걸음은 가다 서다를 반복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이다. 난간에 걸터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주말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 유래를 작품으로 표현한 곳도 있다. <평화의 집-그릇의 방·달의 방>이 그곳이다. 마을 생성의 유래를 되짚어 볼수 있어 챙겨볼만하다.
골목길은 막힘없이 실핏줄처럼 이어지기도 하고 계단과 연결되기도 한다. 여러 계단 중에서 가장 긴 것은 189계단이다. 계단 아래에서 위를 올려보면 아득하다.
다음은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 불리는 148계단이 있다. 두 계단 모두 <감내 어울터>를 지난다. 옛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곳은 커뮤니티센터와 갤러리로 사용 중이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작품에 담긴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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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천동 언덕마루에 서면 감천항이 내려다보인다.
2. 감천 아랫마을은 현지 주민들의 모습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
이기대해안산책로는 부산을 대표할만한 길이다. 산책로는 바다를 벗한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출발한다. 장쾌한 바다는 시름을 잊을 정도로 곱디곱다.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가파른 길을 걷기도 하고 평안의 숲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다 건너 광안대교와 광안리 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아스라이 해운대 풍경도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광안리 해변은 도심 바다가 주는 다양한 멋이 있다. 서퍼들은 추위도 잊은 채파도를 가르고 밤바다는 하늘에서 별을 따다 뿌려놓은 듯 화려하다.
해운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맞이고개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 고갯길이었다. 오래전에 카페가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엔가 웨딩촬영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부터는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달리는 드라이브도 달맞이고개의 재미다. 추리문학관, 파스타 잘하는 집, 색다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등 달맞이고개는 계속 변하고 있다.
해운대 해변의 야경도 챙겨봐야 한다. 거울 같은 바다에 고층빌딩이 반영되는데 그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해 질 녘부터 사진애호가들이 모여든다. 야경 사진에 도전하고 싶다면 삼각대는 꼭 챙겨야 한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은 누리마루 APEC하우스 주차장 옆 선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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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린왕자와 여우는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4. 아스라히 해운대가 바라다 보이는 이기대산책로
동구이바구길, 골목길 따라 생생한 이야기가 들린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는 초량동은 부산의 관문이다. 부산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활기찬 이곳이 일제 때 조성된 매축지(埋築地)였다. 이곳에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인 남선창고가 있다. 주로 명태를 보관했는데 지금은 옛 터만 남았다. 켜켜이 쌓인 붉은 벽돌이 격동기를 보낸 부산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동구 이바구길은 남선창고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바구란 이야기를 뜻하는 부산 사투리다. 남선창고 터에서 100여 m 거리에 옛 백제병원이 자리한다.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설립됐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중식당, 일본인 장교 숙소, 치안 사무소, 예식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지금은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린 독특한 인테리어로 유명한 카페가 손님을 맞고 있다.
초량주민센터를 지나면 미국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지은 초량교회가 나온다. 1892년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다. 교회 골목을 따라 초량동의 옛 모습을 사진과 벽화로 꾸며놓은 ‘담장 갤러리’와 지역 출신 인물들의 이력을 재조명한 ‘동구 인물사 담장’이 조성돼 있다. 인물사 담장에는 이경규, 박칼린 등 친숙한 얼굴들이 있어 반갑다. 이어진 길은 곧추서듯 가파른 168개 층계로 이루어진 168계단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이 계단은 부산항과 산복도로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1960년대까지 물동이를 짊어지고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 주민들은 물론이고 여행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한다. 모노레일 정상부에 오르면 김민부 전망대에 닿는다.
김부민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다. 전망대에 서면 부산항대교와 부산항, 초량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단 뒤편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6·25막걸리’와 게스트 하우스 ‘이바구 충전소’가 있다. 배를 본떠 만든 이바구 공작소 역시 볼거리가 많다. 해방부터 월남파병까지의 역사와 부산 산복도로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전시돼있다.
이바구길에서 특별히 전망이 좋은 곳은 빨간 우체동이 있는 청마 유치환 시인 기념관이다. 카페로 운영하고 있어 전망을 감상하며 쉬어가기 좋다.
나눔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장기려 박사 기념관도 챙겨보자. 장 박사는 25년 동안 복음병원 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사랑으로 인술을 펼친 존경받는 의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품은 병원 옥탑방과 청진기, 낡은 의사가운이 전부다. 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그가 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지 깨닫게 된다. 카페나 기념관에서는 마을 이야기가 있어 더정겹다.
5. 곧추서듯 가파른 168계단
6. 산복도로에 지은 초량동의 건물들
7.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흰여울마을
영도에서 뜨는 길, 절영해안산책로
절영도는 영도의 옛 이름이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철리마가 어찌나 빨리 달리든지 ‘말의 그림자조차도 못 따라올 정도’라는 뜻으로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써 절영도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도를 찾는 이유는 비경으로 꼽히는 태종대를 보기 위해서다. 깎아지른 해식절벽과 말이 달려도 될 만큼 널찍한 반석, 그리고 100년 넘게 부산 앞바다를 밝히고 있는 영도등대는 신선암, 망부석과 함께 태종대의 랜드마크다.
영도에서 태종대만 보고 간다면 진정한 여행 고수라 할 수 없다. 태종대의 명성에 가려 평가절하 된 절영해안산책로도 걸어볼 일이다. 산책로는 반도보라아파트에서 출발한다. 방파제에 그려진 벽화를 하나씩 감상하며 걷다 보면 무지개 빛깔의 피아노 계단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 마을길과 절영해안산책로 갈림길이 나온다. 해안산책로 방향에는 숨겨진 비경이 줄줄이 이어지고 경치 좋은 곳마다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각각 이름이 다른 전망대에서 보는 바다는 분명히 같은 바다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다. 대마도 전망대를 지나면 하늘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 바닥에 강화유리를 설치해 절벽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해안가에서 절벽 위로 조금 더 올라왔을 뿐인데 풍경은 180도 다르게 보인다. 태종대의 감격이 되살아난다.
바다가 있어 더 좋은 부산답다.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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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팁
부산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부산역⇔해운대 등 다양한 코스를 선택해 부산여행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시티투어와 연계한 이바구투어등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저렴하면서도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문의 051-464-9898. 12월에는 부산 광복로 1.2km 구간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이축제는 ‘2014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수상하면서 아시아 겨울대표축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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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별 정보
- 감천문화마을 부산 사하구 감내2로 203
문의 감천문화마을안내센터 051-204-1444
- 이기대산책로 부산 부산 남구 오륙도로 137
문의 해파랑길관광안내소 051-607-6395
- 동구 이바구길 부산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30
문의 초량2동주민센터 051-440-4902
- 절영해안산책로 부산 영도구 해안산책길 52
문의 부산종합 관광 안내소 051-253-8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