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신호등이 없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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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숲,길,예술에 담긴 싱그러운 화성

한낮의 볕이 살짝 덥게 느껴진다. 살결을 쓰다듬는 바람에도 조금씩 더위가 실렸다. 이맘때 빠른 걸음에는 땀이 샘솟으니, 느린 걸음이 제격이다. 화성은 바다의 서정이 발걸음을 뒤따르고 장구한 역사는 숲에 잠들었다. 숲, 바다, 길을 아우르는 화성으로 떠나보자.

글·사진. 임수아(여행작가)

과거는 쉼이 되고, 현재는 문화가 되다
화성시는 경기도 서남단에 자리한다. 오산, 수원, 안산, 평택과 이웃하고 경기북부지역을 제외한 경기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1시간이면 충분히 닿는 거리에 위치한다. 화성은 권역별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서부권은 자연과 생태가 살아 숨쉬고, 남부는 역사탐방과 휴양을 즐기기에 좋다.
마지막 동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여행으로 권할만하다.
권역이 넓고 볼거리가 많은 만큼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는 것이 포인트.
이번 화성 여행은 동부권에서 시작했다.
첫 여행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융릉과 건릉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능이고, 건릉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와 효의왕후 김 씨의 합장릉이다. 이른 아침인 탓에 능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 숲길에는 호젓한 정취가 감돈다. 키를 가늠하기 어려운 소나무들이 하늘을 떠받들 듯 높다랗게 자랐다. 산새들의 지저귐에 숲이 깨어나고, 찬연한 아침 햇살에 간밤의 이슬은 증발한다. 뒤따르는 이나 앞서는 이가 없으니 홀로 걷는 듯하다. 장중한 숲의 풍광은 영화 <사도>에 고스란히 담겼었다. 그 덕분에 영화가 개봉된 이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능원 깊은 곳에 이르자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융릉, 반대쪽은 건릉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연히 아버지 능인 융릉부터 찾는다. 사후에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는 신분이 변함에 따라 무덤 역시 묘, 원, 능으로 한 단계식 격상됐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파란만장하기는 한결같다. 융릉은 정자각과 능의 배치가 다른 조선 왕릉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자각과 능은 일직선에 위치하지만, 융릉은 능에서 조금 비켜섰다.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를 위해 정조가 생전에 그리했다고 한다. 융릉을 뒤로하고 건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 역시 숲이 깊다. 한 줌의 빛이 솔잎에 부딪혀 바늘처럼 예리하게 흩어져 꽂힌다. 수백 년 전의 역사가 고요히 숨죽인 능원은더 이상 왕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휴식과 치유의 숲이다. 능 가까운 곳에 특별한 갤러리가 있다. 과거 찜질방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소다미술관이 그곳이다. 주택가에 자리한 미술관은 지역 주민들과 즐거운 문화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층에는 전시실과 기념품점, 카페가 있고, 2층에는 컨테이너를 덧붙여 놓아 개성이 넘친다. 현재의 미술관 건물에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돼 옛 찜질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컨테이너 주변에 불가마, 족탕 등 찜질방의 흔적이 남아 있다. 종이접기, 아트캔공작소, 플레이그라운드 등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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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유로운 건릉의 정자각
  2. 노출콘크리트로 리모델링한 소다미술관
  3. 소다미술관의 실내전시관
  4. 찜질방에서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소다미술관

광활한 풍광, 실록의 갈대밭
화성 동부권에서 313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린다. 서부권에는 공룡알화석산지와 서해와 맞닿은 작은 포구들 그리고 제부도가 자리한다. 서쪽으로 달릴수록 풍광이 시시각각 변한다. 봉긋한 산봉우리보다 부드럽게 이어진 광활한 땅이 펼쳐진다. 바람의 냄새도 다르다. 은은한 숲 향기보다 깊은 바다 향이 물씬하다. 차창 밖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수평선이 아득하다. 어른 키만큼 자란 갈대가 몸을 흔들며 인사한다. 숲길이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쉼터라면, 바다와 접한 길은 홀로 걸어야 할 도전의 장과 같다. 산책로가 갈대 사이로 이어진다.
아주 오래전 이곳은 공룡이 주인공이었다. 그 흔적들이 산책길 곳곳에 남아 있다. 공룡알화석산지는 발굴 당시 30여 개의 알둥지와 200여 개의 알 화석이 발견됐다. 누드 바위와 해식동굴에서는 생물체의 흔적이 남은 흔적화석도 관찰할 수 있다. 방문자센터에는 한반도 최초 발견된뿔 공룡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화석을 볼 수 있다. 이 화석은 2008년 전곡항 방조제에서 발견됐다.
공룡알화석산지 주변 갈대밭은 사진촬영지로도 인기다. 특히 늦가을 스산한 바람과 함께 어우러진 갈대밭의 모습은 황량함과 쓸쓸함이 묻어 있어 가을 정서와 일치한다. 하지만 여름으로 달려가는 이맘때 갈대밭에서는 생명의 활기와 신선함이 용솟음친다.
갈대밭을 감상하고 나서 송산그린시티전망대로 향한다. 해발 100m 높이에 세워진 이 전망대는 높이가 40.45m에 이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거침이 없다. 드넓은 갈대밭과 막힘없는 바다와 시화호, 그리고 크고 작은 포구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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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탑재산 숲길의 소경.
  2. 갈대가 몸을 흔들며 인사하는 공룡알화석산지.

화성의 명품 걷기 길을 만나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섬이라 하면 제부도가 떠오른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예쁜 섬이다. 제부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있지 않지만,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는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차량이 오갈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섬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항상 갈라지는 것이 아니니 섬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제부도에는 제비꼬리길이 있다. 다녀온 사람마다 명품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제부도선착장에서 출발해 해안테크길을 지나 탑재산 능선을 따라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거리가 약 2km 안팎으로 걷기에 수월한 데다, 1시간 정도면 바다와 숲길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 점이 제비꼬리길을 명품길의 반열에 올렸다. 제부도를 코앞에 두고 모세의 기적을 기다린다. 육안으로 보기엔 물이 빠진 것 같지만 입도를 막은 바리게이트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야 바리케이드가 올라간다. 길게 늘어선 차량이 순식간에 섬에 빨려 들어가듯 이동한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은 걷거나 마차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이동한다. 육지에서 엑서더스를 시작한 사람들은 일제히 차 창문을 내린다. 바닷바람을 쐬기 위해서다. 제부도는 육지와 2km 남짓 떨어졌지만 바람의 맛이 다르다. 육지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찰싹거리는 낮은 파도는 수런거리고 갈매기들은 편대로 축하비행을 한다. 제비꼬리길은 제부도선착장 등대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여행자들은 으레 붉은 등대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그리곤 방파제에 잇댄 낙조 전망대에서 서해를 가슴에 품는다. 이제 본격적인 걷기에 나선다. 나무데크가 설치된 해안 산책로는 900m 정도 이어진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포토존과 전망대가 보이고, 쉼터 의자가 놓였다.
잔잔한 해수면을 따라 수평선이 아득하다. 고요한 정적을 깨는 얄미운 녀석은 갈매기다. 새우깡에 길들여졌는지 사람만 보면 ‘꽥꽥’ 고함을 지르며 저공비행한다. 산책로에는 제부도와 화성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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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 빨간등대는 제부도의 랜드마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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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 전곡항의 낙조.
    제부도에 서식하는 생물들, 제부도에 얽힌 전설들, 갯벌의 신비 등 소소한 읽을거리가 있어 발걸음을 쉬 옮기기 어렵다. 어느덧 산책로는 제부도 남쪽에 자리한 제부도해수욕장에 닿는다. 밀가루보다 더 고운 모래가 해안가에 뒤덮였다. 그 앞으로 자갈과 갯벌이 바다와 한 몸이 되었다. 바다 뒤에는 음식점들이 줄 서듯 이어져 있다. 대부분 바지락칼국수와 조개구이, 회를 취급한다. 먼발치에서 호객할 뿐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탑재산 숲길에 들기 전, 도로변에 있는 제부도 아트파크를 먼저 찾았다. 제부도 아트파크는 컨테이너 6개로 구성된 전시·조망·휴게·공연이 모두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운이 좋으면 수준 높은 공연이나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도 있다고 하니 노려볼만하다. 무엇보다 서해바다의 감성과 감각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뤄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시 제비꼬리길에 올라섰다.
    길은 이전과 다른 숲길 산책로다. 해송이 우거져 조망은 좋지 않지만, 숲특유의 상쾌함은 바다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다. 탑재산전망대에 이르자 숲길이 막바지에 이른다. 제부도선착장은 물론이고 제부도 진입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의 마감이 일몰에 있듯, 여행의 마감 역시 일몰 감상으로 마침표를 찍으련다. 제부도 일몰 포인트는 궁평항과 전곡항 어느 곳이든 괜찮다. 두 곳 모두 서해의 낭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공항은 요트와 보트가 접안해 이국적인 멋이 흐르고, 궁평항은 포구의 서정미가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TIP.

    여행지별 정보

    - 융릉·건릉(화성 효행로 481번길 21-1)
    문의 031-222-0142
    - 소다미술관(화성 효행로 707번길 30)
    문의 070-8915-9127
    - 공룡알화석지(화성 송산면 공룡로 659일원)
    문의 031-357-3951(공룡알화석지 방문자센터)
    - 송산그린시티전망대(화성 송산면 고정리 산1-32)
    문의 031-369-8315
    - 제부도(화성 서신면 해안길 421-12, 어촌종합관광안내소)

    제부도 바닷길 통행시간

    5-6월은 대체로 통행에 문제가 없으나 정확한 시간은
    제부도 관리사무소(031-355-3924)에 문의할 것.

    여행팁

    궁평항과 제부항에는 육지에서 50-200m가량 떨어진 바다에 설치된 다리(잔교) 위에서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다. 잔교 끝부분에 넓은 휴식공간인 ‘파고라’가 있어 낙조나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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