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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 기댄, 아늑한 ‘겨울왕국’
스위스 알프스

알프스의 겨울은 시리고도 아늑하다.
점점이 박힌 샬레 가옥 사이를 붉은색 열차는 덜컹거리며 오르고, 차창 밖 설국은 굽이굽이 사연이 가득하다.
스위스 베르너 오버란트 알프스의 산악마을에 눈이 내리면 숨겨진 ‘겨울왕국’이 베일을 벗는다.

글·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알프스 마을의 겨울 만남은 매혹적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들은 밤새 별빛을 받아내고, 외투를 벗으면 투박한 흙내음이 발밑에서 스며든다. 라우터브룬넨, 그린델발 트, 벵엔 등은 해발 1,000~2,000m 사이에 들어선, 베르너 오버란트 알프스 지역의 산악마을들이다. 세모 지붕에 비낀 눈의 윤곽은 골목을 거닐 때마다 차곡차곡 모습을 바꾼다.
라우터브룬넨에는 세계자연유산인 알레취 빙하의 만년설이 흘러내린다. 협곡에 들어선 마을은 건물도 낮게 웅크려 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정감이 간다. 괴테가 시의 영감을 얻었다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교회당 너머 빙벽을 만들어낸다. 라우터브룬넨에서 케이블카로 닿는 뮤렌은 겨울에 스키 마니아들이 몰려들 뿐, 인적이 뜸해 밀애를 즐기려는 허니무너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라우터브룬넨에서 톱니바퀴 열차로 갈아 타면 청정마을 벵엔과 닿는다. 해발 1,275m 벵엔은 겨울이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치즈 가게의 담소로 하루를 시작해 스키를 타고, 스파에 몸을 담그는 알프스의 겨울 일과가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 제조해 나누고 남은 치즈를 판매한다. 동네 골목 어귀에는 산골 영화관이 빛바랜 필름처럼 들어서 있다.
겨울 맥박 요동치는 그린델발트
계절이 깊어지면 라우터브룬넨의 동쪽 마을인 그린델발트의 호흡이 빨라진다. 라우 터브룬넨이 고즈넉하다면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인 그린델발트는 한껏 들떠 있다. 스키 시즌에는 거리의 상가들이 자정까지 문을 열고, 스키나 보드를 들고 열차나 버스에 오르는 모습은 흔한 일상이 된다. 봄, 가을 트레킹 코스였던 대부분의 길목은 눈이 내리면 천연 슬로프로 매끈하게 외모를 바꾼 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파우더 스노우’ 위에 스노우보더들은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 다. 11월 말 시작된 윈터 시즌은 4월까지 하얗게 이어진다.

그린델발트에서 연결되는 해발 2,168m의 휘르스트는 액티비티의 '제2 캠프'다. 트레 킹과 흥미로운 탈 것들로 북적였던 공간에 눈이 내리면 가족 단위 스키어들이 찾아든 다. 휘르스트역에는 이방인들의 쉼터인 산장이 들어서 하루 묵을 수 있고, 등산화나 스키를 빌릴 수 있다. 휘르스트 글라이더나 플라이어를 타고 설경 속을 가로지르는 체험은 겨울 시즌에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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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붉은색 산악열차는 알프스의 설경속을 덜컹거리며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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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눈덮인 알프스 봉우리와 연인들


록 콘서트 등 다채로운 윈터축제

산악마을에서 펼쳐지는 겨울축제는 알프스를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매년 1월 중순 산악마을 벵엔 인근의 라우버호른에서 열리는 국제스키대회 때는 스타급 선수들이 스피드를 겨룬다. 그린델발트에서는 월드스 노우 페스티벌이 펼쳐지는데, 눈 조각 전시 회는 한 조각가가 1983년 하이디의 눈 조각 상을 만든 뒤 매년 이어지고 있다.
젊은 청춘들의 피를 달구는 축제는 클라이 네샤이텍에서 열리는 스노우펜 에어 콘서 트다. 아이거 북벽 아래 해발 2,061m 가장 높은 고도의 록 페스티벌에는 로커들이 참가해 강렬한 겨울 소나타를 완성시킨다.
라우터브룬넨과 그린델발트를 출발한 열차 들은 클라이네샤이덱에 집결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인 융프라우요흐(3,454m) 로 향하는 산악열차는 100년 세월을 넘어 섰다. 암벽터널, 혹한, 폭설 등으로 철도완 공에는 16년이나 소요됐지만,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융프라우 봉우리와 알레취 빙하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정상에 오르면 해발 3,000m 만년설 빙하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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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클라이네샤이텍에서 열리는 스노우펜 에어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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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겨울 액티비티의 아지트인 휘르스트 산장의 풍경

호숫가, 산악마을의 관문 인터라켄

산 아래 알프스의 도시는 설경을 털어내고 한결 포근해진다. 인터라켄은 이름에 담긴뜻 그대로 '호수 사이의 도시'다. 툰 호수와 브린쯔 호수 사이에 위치한 채, 산악마을들로 향하는 오랜 관문 역할을 했다. 도심 골목에 서면 아이거, 융프라우, 묀히 등 베르너 오버란트의 3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해발 567m인 도시는 인구 5,000명으로 아담하지만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와 늘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중심가인 회에베크 거리는 겨울이면 아이스링크가 들어선 다. 인터라켄의 언덕인 하더쿨룸은 ‘인터라 켄의 지붕’ 격이다. 해발 1,322m 하더쿨룸 에서는 두 호수와 인터라켄 시내가 한 폭에 어우러진다. 언덕 위에는 360도 조망이 가능한 레스토랑과 공중에 매달린 듯한 전망 대가 들어섰다. 하더쿨룸은 해가 저문 뒤에는 아득한 일몰과 야경을 위한 최적의 뷰를 만들어낸다. 베르너 오버란트 알프스의 저녁은 전통 맥주인 루겐브로이와 치즈 퐁듀가 어우러져 분위기를 돋운다. 이 일대는 레드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의 명성이 높다. 마을에서 만든 치즈에 와인 한 잔이면 달뜬 몸은 알프스의 만년설처럼 노곤하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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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하더쿨룸에 오르면 베르너 오버란트 알프스와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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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벵엔 마을에서 직접 만든 스위스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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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융프라우 철도 100년을 기념하는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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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그린델발트를 오가는 노란색 포스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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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알레취빙하 위 스위스 전통악기 호른 연주

출 · 도착 오차 없는 버스와 오토캠핑장의 개 샤워장
포스트 버스로 불리는 노란색 버스들은 산악마을 열차와 유기적으로 연동돼 있다. 심야시간대에는 버스가 열차 역할을 대신하며, 열차 패스로 탑승할 수 있는 버스도 오간다. 버스 출·도착 시간은 1분의 오차 없이 정확한 편이다. 현지 호텔 투숙객에게는 무료 버스 이용 패스가 제공되는 것도 독특하다.
벵엔, 뮤렌 등 산악열차만 닿는 마을 내 이동수단은 전기자동차다. 골목길에서는 앙증맞은 소형 전기자동차가 길을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트럭도 승용차도 꼬마 자동차만 한 크기이다. 이곳 역 앞에서 볼수 있는 유일한 경유차는 비상시에만 쓰인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스위스는 오토캠핑 문화 역시 활성화돼 있다.

캠핑장 바닥에 누워 설산 위로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는 것은 감미로운 추억이다. 그린델발트, 라우터브룬넨 인터라켄 일대의 오토캠핑장은 유럽 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라우터부룬넨의 오토캠핑장에는 개 샤워장까지 준비돼 있다.
스위스의 2차선 산악도로는 중앙선이 노란색 대신 흰색 실선이나 점선이 칠해져 있다. 4차선 도로에서는 오른쪽 차선에서 추월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반드시 뒷좌석에 착석해야 하며, 가끔 캠핑차를 탄 여행객들이 뒷좌석에 누워서 이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교통경찰들의 주요 단속대상이다.

스위스에서는 보행자가 왕이다. 횡단보도 외에서도 길 건널 의사가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면 자동차가 일단 멈춰서야 한다. 자전거 역시 도로에서 우대받는다. 인터라켄 지역에서는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자전거가 천천히 달린다고 뒤따르는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지 않으며 뒤에서 묵묵히 서행할 뿐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람과 환경을 중시하는 풍토는 이곳 사람들의 삶에 진하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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