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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영화 속 교통안전
  •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전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

    영화 <그린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함께 살아간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 그 경계에서 두 남자는 세상의 편견에 맞선다. 사람들 몸에 깊게 배인 편견은 마치 오랜 습관과도 같아 더 처참하다. 잘못된 습관이 힘을 가지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 내는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관습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글. 차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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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다름’을 마주하는 로드무비

영화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한 차로 미국 남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은 백인 운전기사 토니. 한 사람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다. 그리고 그들의 차엔 항상 여행 가이드북 <그린북>이 있다. <그린북>은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식당, 호텔, 주유소 등을 안내해 주는 책자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상당했다. 백인과 흑인은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없었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심지어 어떤 주에서는 흑인 운전자가 백인 운전자의 차를 추월할 수 없다는 법도 있었다. 이런 차별은 두 주인공이 향하는 미국 남부 내륙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다른 인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다루고 있다. 거친 인생을 살아 온 토니와 우아함의 결정체로 표현되는 돈 셜리 박사라는 캐릭터 설정이 이 주제를 더욱 극대화 시킨다. 노동자 계층으로 묘사되는 여타 영화의 흑인과는 달리 우아하고 학식이 높은데다 천재이기까지 한 돈 셜리 박사,그리고 입담과 주먹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며 살아온 백인의 운전기사. 다른 계층, 다른 문화, 그리고 다른 인종이라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한 대의 자동차로 여행을 하며 이야기는 점점 절정에 다다른다.
일반적인 로드 무비는 여정과 함께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영화 <그린북>도 그런 의미에서 로드 무비라는 장르에 충실하다. 자칫하면 뻔한 스토리 전개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덕분이었을까. 오히려 과장하지 않고 덤덤하게 표현한 장면들이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영화 <덤앤 더머>,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 코미디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피터 패럴리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사소한 습관이 만든, 인종보다 큰 차이

두 주인공의 전혀 다른 모습은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불안하게 운전하는 토니에게 돈 셜리 박사는 ‘양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라‘고 소리친다. 자신이 배운대로 행동하는 돈 셜리 박사의 눈에는 매사 건성인 그의 태도가 매우 답답했을 터다. 얼마 안 가 돈 셜리 박사는 다시 한 번 호통을 친다. “앞을 보라고요!” 뒷 좌석에 있는 돈 셜리 박사를 바라보며 운전하는 토니의 모습을 보면 관객의 입장에서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토니는 벌써 전방주시 태만으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운전대를 양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 또한 안전운전의 기본. 이 상황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토니는 여행을 망칠 뿐만 아니라 과태료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 중반부에 다다르면 토니가 자동차 창밖으로 다 마신 음료수 컵을 버린다. 이때 돈 셜리 박사의 상식은 다시 한 번 발동한다. 이윽고 차를 세워 다시 쓰레기를 줍게 하는 돈셜리 박사에게 “자연으로 돌아간다고요”라고 항변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쩔수 없이 다시 쓰레기를 주워 자동차를 출발하는 토니. 토니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습관이 돈 셜리의 눈에는 위험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행동들이었다. 돈 셜리 박사의 이런 일침은 안전운전 홍보대사로 임명할 만한 행동이었다. 덕분에 토니는 도로 위 쓰레기 투척으로 인한 과태료와 벌점을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그들의 마지막 여행지는 한 호텔. 그곳에서 돈 셜리 박사는 뿌리깊은 편견과 마주한다. 자신이 공연하기로 한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 호텔 지배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적인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 규칙이 그래요.” 한 사회의 관습이 악의 없는 개인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다. 개인에겐 사소한 습관이 한 사회에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관습이, 얼마나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것일까.

  • 핸들 양손으로 잡으라면서요 빨리 받아요, 빨리빨리!
  • 정면을 보라고요!
나를 지키는 힘은 ‘기품’에서 나온다

“폭력으론 이길 수 없어요. 오직 기품만이 승리할 수 있어요.”
영화 속 돈 셜리 박사의 대사다. 여행 중 경찰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던 돈 셜리 박사를 도우려던 토니가 경찰관을 폭행하고 유치장에 갇힌 두 사람. 돈 셜리는 토니에게 폭력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자신이 지켜온 기품으로 위기 상황을 빠져나온다.
화를 낼 법한 상황에서조차 의연하게 대처하는 돈 셜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토니도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게 된다. 주먹만 믿고 살아가는 토니가 폭력이 아닌 기품의 힘을 알게 된 밤이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백인이 드나드는 바에서 술을 먹다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해가 진 뒤에 길에 있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때 마다 돈 셜리 박사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덤덤하게 찾아간다. 가끔은 매우 고독하고, 폭행으로 멍든 눈가를 화장으로 가리기 위해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이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수면 아래에서 처절하게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백조처럼, 낮에는 편견을 이겨내며 저녁에는 완벽한 공연으로 사람들 앞에 나선다.
돈 셜리는 폭력 앞에서도 정도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점이 돈 셜리 박사를 더욱 강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물론 힘들고 억울하지만 결국에는 당당하게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돈 셜리 박사였다. 기품은 자신을 지키는 힘이었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돈 셜리 박사의 신념이다.

그린북
영화정보
그린북_Green Book (2018)
감독 피터 패럴리
개봉 2019.01.09.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사소한 행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영화는 경직돼 있던 돈 셜리 박사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면서 끝이 난다. 차별 속에서 기품있게 고군분투하는 돈 셜리 박사의 모습은 주먹뿐이던 토니의 인생도 변화시켰다. 사소한 언행부터 극명하게 달랐던 두 사람이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그린북>. 어쩌며 이 영화는 ‘다름’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야 말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버리던 작은 습관, 피부색의 차이를 구분짓고 경계하는 편견. 이 중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쯤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쩌면 나도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기품있는 시선으로자신의 사소한 습관을 점검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