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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세계 도로는 지금

해저터널,
멈추지 않는 꿈의 길
세계 각국의 해저터널

어느 시대나 인류는 더 빠른 길을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길의 역사는 곧 지름길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터널은 새롭게 개척해 온 길이자 소통과 번영의 징표다.
건설시장 조사 전문기관 CIC(Construction Intelligence Center)에 따르면 전 세계 터널 시장 규모는 1조3700억 달러다. 이 가운데 아시아는 전체의 35%인 4772억 달러(약 550조 원)에 달한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터널에서 나라와 나라를 잇는연결통로로 발전하고 있는 해저터널.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인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된 시점에서 세계 해저·하저터널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해저터널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글. 정혜영

JAPAN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
세이칸 터널

세이칸(青函) 터널은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해저터널이다. 혼슈 북단의 아오모리(靑森)에서 홋카이도의 남단 하코다테(函館)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물살이 거센 쓰가루해협을 관통하는 세이칸 터널의 총 길이는 53.85km(해저구간 23.3km)에 이르며, 1988년 개통 당시만 해도 토목 기술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터널이었다. 그러나, 지형 상 구릉이 많아 해저심도 역시 깊을 수밖에 없어 건설기간이 무려 24년이나 걸린 세이칸 터널은 왜 계획되었던 것일까? 홋카이도는 지리적으로도 최북단에 있는 원시림의 섬이었지만 석탄, 목재, 농산물 등 자원의 보고다. 이런 홋카이도가 개발의 바람을 타게 된 것이 터널 개통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이유는 20세기 초 국제 정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세이칸 터널은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 아시아권은 일본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아시아 전역을 해저 터널로 연결하겠다는 일본의 야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야심찬 계획은 태평양 전쟁 패전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으나, 일본 열도를 잇는 세이칸 터널의 건설은 앞당기게 된 것이다. 2016년,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스위스의 철도 터널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57.5km)이 개통되기 전까지 세이칸 터널은 28년간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길고 깊은 터널이라는 점 외에도 해저구간에 두 개의 역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화재를 대비한 승객들의 대피 장소 역할을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터널 상부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고 승객들은 정지된 열차에서 탈출해 서비스 터널로 가서 기밀실로 대피하게 된다. 당시 기술적 한계에도 수심 100m 이하의 바다 속에서 23km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UNITED KINGDOM 유럽통합, 200년의 꿈
채널 터널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해저터널, 흔히 유로터널(Euro Tunnel)이라 불리나 정식 명칭은 채널 터널(Channel Tunnel)이다. 영국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인 도버해협 밑을 뚫어, 영국의 ‘포크 스톤’과 프랑스의 ‘칼레’를 잇는 이 터널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시대에 처음으로 구상되었다. 최초로 터널 계획을 구체화한 것은 영국의 토목기술자 J.호그쇼(1811~1891)로 그가 1865년에 한 해저지질조사에서 해저터널의 굴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1882년, 영국과 프랑스 양국이 터널 건설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듬해 영국에서 국방상의 이유로 여론이 나빠져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66년에 이르러서야 두 정부가 다시 터널 굴착작업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지질조사에만 약 30년 소요, 영국 국민과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인 건설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7년에 착공해 3년 만인 1990년 10월 30일에 영국과 프랑스가 드디어 맞뚫렸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꾼 유럽통합이라는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대명제. 200년 간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철도 개통은 4년 후인 1994년에 이루어졌지만, 길이 50.5km의 이 터널로 인해 런던~파리를 3시간 만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채널 터널은 자동차 수송 열차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해저터널을 이용하기 위해 굳이 차를 두고 기차로 옮겨 타지 않아도 자신이 타고 온 차에 가만히 앉아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채널 터널은 20세기의 가장 큰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1996년, 미국 토목학회에 의해 현대토목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오늘날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로 인정받는다. 전체 길이는 조금 더 짧지만 해저구간만 보면 앞서 언급한 일본의 세이칸 터널(해저구간 23.3km)보다 더 긴 38km에 이른다. 뱃길로 2시간 이상 소요되던 구간이 35분으로 단축되었고 고속철 ‘유로스타’는 3시간 만에 런던과 파리를 잇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채널 터널을 개통하기까지 8년이라는 건설기간 동안 150억 달러(한화 약 18조 원)을 들여 이룬 것은 드라마틱한 이동 시간 단축이라는 성과보다 유럽통합이라는 200년의 숙원 사업 실현,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만들어낸 관계 개선의 상징으로서 더욱 의미가 깊지 않을까.

UNITED STATES OF AMERICA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디트로이트-윈저 터널

미국 디트로이트-윈저 터널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를 연결하는 국제 고속도로 하저터널이다.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기에 디트로이트-캐나다 터널이라고도 불린다.
미국과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함께 서로를 연결할 터널을 만들어 왔다. 디트로이트-윈저 터널은 1930년에 완공된 것으로 곧 있으면 무려 100년을 맞는다. 하지만 두 도시 사이의 터널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첫 번째는 1891년 완공된 ‘세인트클레어 터널’로 미국 미시간주 포트 휴런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사니아를 연결하며 1995년에 새로운 더 큰 터널로 대체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는 북미에 건설된 최초의 (철도가 통과할 수 있는) 실물 크기 수중 터널로, 미국과 캐나다의 토목 공학의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있다. 두 번째는 1910년 디트로이트 강 아래 디트로이트와 윈저를 잇는 미시간 중앙 철도 터널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 1930년에 완공된 디트로이트-윈저 터널이 세 번째 하저터널이자,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한 최초의 국제 자동차 터널이다. 이런 경험으로 미국 내에도 해저/하저터널에 관해 여러 기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첫 번째 하저터널 은 1927년에 완공된 뉴욕 맨해튼과 저지시티를 잇는 허드슨 강 하저터널인 ‘홀랜드 터널’이고, 두 번째는 1928년에 완공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와 알라메다 시를 연결하는 수중 평행 터널 ‘포지 튜브’인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터널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디트로이트와 윈저, 두 도시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큰 도시라는 점과 자동차 산업을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100여 년 전부터 두 나라 사이의 터널을 만든 건 아마도 지리적, 경제적으로 상생의 마인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실제로 2004년 국경수송 파트너십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15만 개의 일자리와 연간 130억 달러의 생산은 디트로이트-윈저 국경 통과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터널 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황금기 때와는 사정이 다르나 여전히 두 도시를 왕래하는 셔틀버스가 매일 운행하며, 국경을 넘어 나들이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세계 5대 차량용 해저터널 ‘보령해저터널’

우리나라도 세계 해저터널 사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무려 4,000일 간의 대장정 끝에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6,927m의 차량용 해저터널인 ‘보령해저터널’이 12월 1일 전면 개통했다. 이는 국내에서는 가장 긴 해저터널이자 세계적으로는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다섯 번째로 긴 차량용 해저터널이다. 부산에서 파주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해안국도인 국도 77호선 가운데 단절 구간이었던 대천-태안 구간이 보령해저터널을 통해 이어지게 된 것이다. 터널 개통으로 태안 안면도 최남단인 영목항과 보령 대천항 간 이동거리가 현행 95km(90분)에서 14km(10분)으로 크게 단축되었으며 접근성이 낮았던 의료서비스와 섬 밖으로의 통학 여건 등 섬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개선될 전망이다.

  • 참고 문헌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저널 V.103 2009.11.(저자 박원호)
  • 사진 출처채널 터널 : ice.org.uk, 디트로이트 윈저 터널 : windsortunnel.com, 보령해저터널 : 국토교통부
  • *하저터널: 하천의 밑바닥을 파서 만든 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