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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하러 갑니다
강남소방서 구조대장 이용진
왕복 14차로에 꽉 들어찬 차들. 복잡한 서울에서도 가장 넓고 교통량이 많은 강남 도로는 언제나 소란스럽다.그리고 그 도로 위에서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강남소방서 이용진 구조대장이 출동한다. 사이렌을 울리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만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난다면 한시라도 빨리 나타나줬으면 싶은 시민의 히어로, 그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글. 임지영 사진. 김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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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7:00
출근
아침 시간을 활용한 자기계발
오전 7시.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7시부터 일터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소방서에서 처음 하는 일은 일과 체크. 그리고 남는 시간엔 영어공부를 한다. 구조대장도 영어가 필수인걸까? 그는 자기계발의 의미도 있지만 업무상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지역의 특성상 외국인이 많아 구조가 필요한 출동 상황에서 급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삼성역 사거리 에서 택시 교통사고가 났었는데요. 현장에 가 보니 외국인 한 분만 덩그러니 계셨습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목격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직업도 간호사셔서 피해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소통의 부재로 인해 구조가 늦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죠.” 본격적인 업무는 8시 30분에 시작된다, 지난 밤 근무자 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개인 장비를 체크한다. 공기호흡기, 무전기를 챙기고 공용장비와 구조장비, 유압장비 등 만일에 상황에 적재적소에 쓰일 장비들을 점검한다.
- AM 08:30
- 개인 정비
- AM 09:30
- 일일 브리핑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오전 9시 반. 미팅이 끝나면 오전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시작된다. 그날 다른 팀이 야간에 나갔던 교통사고나 다른 소방서의 특이한 케이스의 사고에 대한 영상을 받아서 브리핑을 한다. 사고가 작더라도 특이한 케이스를 모아 함께 보며 똑같은 일이 없게 대비하기 위함이다.
“영상을 띄워놓고 브리핑을 하고, 같이 보면서 대원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영상을 같이 살피며 작업할 때 안전에 미흡했던 것을 보고 체크하죠. 다른 팀원들이 한 것을 보면서 현장에서는 모르지만, 나중에 영상이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보이는 것이 있으니까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조심해야 겠다’ 하며 사고도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교통사고 현장은 사고의 경중을 떠나 도로 가운데를 막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 그 자체다. 가해자와 피해자, 막힌 도로에 몰려든 사람들, 경찰과 구조대가 모두 출동한 자리는 가끔 통제가 안 되어서 아쉬울 때가 있다.
“상황마다 다양하지만, 사고 현장에서는 구조가 최우선이고, 일분일초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현장 통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통제를 잘 따라 주시지만, 도로 위에서 교통 통제가 안될 때는 답답하기도 하죠.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시민 여러분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PM 13:30
- 팀 훈련
출동! 연습은 실전같이
오후 1시 반. 오후의 가장 중요한 업무, 팀 훈련 시간이다. 벨이 울리면 언제든 숟가락을 놓고 출동해야 하는 긴장된 점심시간이 지난 후다. 팀 훈련은 실제로 현장에 갔을 때 어떤 상황이라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훈련하는 것이다.
“사고는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팀 훈련은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서 같이 대응하는 현장 스킬을 익히는 시간입니다. 시스템적으로 이해를 해야 현장에서 빨리 작업이 되니까 특히 신입에게 중요하죠, 소방학교에서 배워도 현장 스킬은 팀과 같이 움직이며 익혀야 경험이 됩니다. 현장에서 가까이 있는데 연기 때문에 안보이거나 시끄러울 경우 미리 약속된 수신호를 동원해서 소통하며 손발을 맞추기도 합니다.”
실제 상황에 대비한 이런 훈련은 물론 긴급 상황이 아닐 때의 일과다. 방제센터에서 지령 벨이 울리면 바로 버스에 탑승해야한다. 가는 길에 대략적인 상황을 센터에서 듣고, 대응을 위해 준비한 다음 현장에 도착한다.
“교통사고 발생, 요구조자 있음, 차종은 무엇이고 추돌인지 충돌인지, 차 대 차인지 차 대 시설물인지 그런 사고 상황을 들으면서 어떤 장비가 필요한 지 차 안에서 미리 준비하죠. 매일 똑같은 사고가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지 늘 긴장이 됩니다.”
- PM 18:00
- 퇴근길
사명감으로 준비하는 내일
오후 6시. 퇴근 시간이다. 출동이 없는 날이라 정해진 훈련만 하고 제때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많으면 하루에도 2~3번 출동을 나가기도 한다. 구조대원은 사고 시에 차를 들고, 지붕을 뜯어서라도 시민을 살리는 영웅이지만, 영웅도 사람인지라 모든 사람들을 전지전능하게 구할 수는 없다. 그가 생각하는 구조대원에 필요한 덕목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다.
“사명감이나 소명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어느 업무나 그렇겠지만, 이걸 내가 해내지 못하면 창피하다. 그런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일합니다.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한다. 사실 상황에 따라서 구할 수 있는 사람도 못 구하게 되면 죄책감이나 트라우마도 생기죠.”
소방청에서는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소방심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강남소방서엔 매주 금요일마다 상담사 선생님이 찾아와 그와 동료들의 상담을 해준다. 그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이런 지원이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가끔 안쓰럽게 보거나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소방관을 좋은 시선으로 봐주시고 지원이나 격려도 많이 해주시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하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민을 위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교통사고 발생 시 응급 처치 요령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 대상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거나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아픈 줄도 모르고 흥분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을 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저희가 구조해드리겠습니다.” 구조대장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도로 위 사고를 주시하며 대기 중일 수많은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이 무사히 퇴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앞, 뒤로 모두 운전석이 있어 자유롭게 주행이 가능한 양방향 구조차가 지난 11월 19일 국내에 도입됐다. 유독 가스 차단은 물론, 열적외선 카메라 모니터가 운전석에 설치돼 있어 연기 속에서도 운행이 가능 하다. 양방향 구조차 도입으로 터널과 같이 시야가 좁고 갓길이나 피난 연결통로가 충분하지 않아 진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구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