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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도로 위 사람들

이른 아침, 출근과 등굣길
안전을 수호하는 모범운전자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도로가 가장 막힌다는 출근 시간대. 교차로, 사거리 등 교통 혼잡 지역에 여지없이 나타나 차량의 원활한 흐름과 시민의 안전 보행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파란색 셔츠 위 ‘모범운전자’ 견장이 눈에 띄는 이들은 도로 위 안전수호자라 불리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소속 모범운전자들이다. 전국 17개 지부, 257개 지회, 2만 6천여 모범운전자를 대표해 서울 방배모범운전자회를 찾아 그들의 분주한 아침을 엿봤다.

글. 이지연 사진. 김범기

1 DAY 06:00 아침 조회로 만반의 준비를! 07:00 막힘없이, 물 흐르듯이!
AM 06:00
아침 조회로 만반의 준비를!

첫째도, 둘째도 안전
오전 6시. 사당역 부근 고가차도 아래, 방배모범운전자회 사무실로 파란색 셔츠를 입은 모범운전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목례로, 거수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모범운전자들은 지도부장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근무 위치를 확인했다. 도로교통법 제2조 33항에 의하면 ‘모범운전자란 도로교통법 제146조에 따라 무사고운전자 또는 유공운전자의 표시장을 받거나 2년 이상 사업용 자동차 운전에 종사하면서 교통사고를 일으킨 전력이 없는 사람으로서 경찰청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선발되어 교통안전 봉사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소속 모범운전자들은 ‘경찰공무원을 보조하는 사람’으로서 교통보조근무 및 거리질서 홍보활동, 교통안전 캠페인 등을 함께 전개하며 선진교통질서 문화 정착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방배지회 모범운전자들은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요일별로 3개 조로 나눠 사당역 사거리를 비롯해 주요 교차로 13곳에서 무보수로 봉사한다. 평균 운전경력이 30년을 훌쩍 넘고, 무사고 경력도 15년부터 30년까지 다양할 만큼 ‘베테랑’들이다.
“첫째도, 둘째도 ‘사람의 안전’임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각자 위치에서 수고해주십시오.”
방배지회장이자 2007년 이미 30년 무사고 영년표시장을 수상한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윤석범 회장이 아침 조회 시간에 그날의 특이사항 등을 공유하며 교통봉사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AM 07:00
막힘없이, 물 흐르듯이!

왕복 10차로에 서다
오전 7시. 사당역 사거리는 남태령 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입하는 출근 버스와 승용차들로 언제나 혼잡하다.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한 남부순환도로까지 연결되어 월요일 출근시간엔 교통 혼잡이 더하다. 2개의 버스전용차로를 포함해 왕복 10차로가 펼쳐진 사당역 사거리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경광봉을 손에 든 모범운전자가 성큼 걸어 들어간다. 시민들의 안전만큼이나 모범운전자의 안전도 중요하기에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차원에서 8차선이 넘는 도로 중앙선에는 모범운전자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 방침에 따라 모범운전자는 빗금 표시된 안전지대 위에서 꼬리물기 차량을 끊어내고, 횡단보도 침범 차량 등을 정리하며 원활한 교통흐름에 힘을 보탠다. 경광봉을 번쩍 들어 운전자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경광봉을 힘차게 돌려 ‘통과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은 교통정리 수신호 권한을 경찰공무원 및 경찰공무원을 보조하는 모범운전자, 군사경찰, 소방공무원 등으로 지정하고 있다. 신호등보다 우선인 모범운전자의 수신호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신호지시 위반으로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네고 가는 운전자를 만날 때는 힘이 나지만, 수신호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지나가는 운전자를 만날 때는 힘이 빠진다”고 모범운전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08:00 횡단보도도 안전하게! 1DAY
AM 08:00
횡단보도도 안전하게!

횡단보도 건널 땐 잠시 멈춰 좌우를 살펴요
오전 8시. 인근 이수초등학교의 요청에 따라 사당역 1·2번 출구 사이에도 모범운전자가 배치됐다. 8시부터 8시 40분까지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췄다. 편도 1차로에 신호등 없는 짧은 건널목이지만 차량이동이 많고, 제법 속도를 낸 차량들이 많아 한 눈에 봐도 위험해 보였다. 승용차뿐만 아니라 2층 광역버스, 덤프트럭 등 대형차량도 지나가는 길목이여서 한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을 보며 걸어오던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말릴 새도 없이 횡단보도 아래로 발을 디뎠다. 이를 발견한 윤석범 회장이 급히 경광봉을 들어 달려오던 차량을 멈춰 세웠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었다. 윤 회장은 “걸으면서는 휴대폰을 보지 말고, 횡단보도 건널 때는 반드시 멈춰 서서 좌우를 살피고 건너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이런 곳에는 ‘우선멈춤’ 표지판이 꼭 있어야 한다며 현장 근무 시 발견한 문제점을 꼼꼼히 메모했다.
3학년생 딸아이를 둔 학부모 이지영 씨는 “평소 학교에 가려면 신호등을 5개나 건너야 해서 등교할 때마다 아이들과 동행하고 있다”며 “모범운전자 분들이 나와 교통지도를 해주니 무척 안심이 된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AM 09:00
우리는 모범운전자입니다!

서로 존중, 서로 배려
오전 9시. 2시간 여, 도로 위 교통보조근무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범운전자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근무하는 동안 무탈했던 것에 대한 안도감 같았다. 매연, 미세먼지에 코로나까지 더해진 요즘, 위험 요소가 많은 도로 위에서 교통보조 근무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모범운전자들은 매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도로 위에 선다.
“전국에 계신 많은 모범운전자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도로 위에 서지만, 위험한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보람을 느낄 때가 더 많죠. 경찰의 보조로서 일상생활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윤석범 회장은 국회, 서울시, 구청, 경찰서는 물론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 다양한 기관 및 단체와 손잡고 시민의 안전을 위한 법제도 제·개정, 교통정책 수립 등에 일조할 때 보람을 느낀다. 실제 이런 의견과 제안들이 우리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때면 모범운전자라는 자부심이 더하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는 교통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함으로써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안전속도 5030’, ‘전동킥보드 헬멧 착용과 2인 이상 탑승 금지’ 등 도로교통안전 관련 법제도 개선에 일조했다. 또한 모범운전자를 대상으로 탑승객 목적지에 따른 이상신호 감지 시 바로 112에 신고하는 ‘자살예방캠페인’을 3년째 벌여 소중한 목숨을 구하고 있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의 교통문화도 발전할 수 있다”는 윤석범 회장의 말처럼 매일 아침, 위험하고 매캐한 도로 위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땀 흘려 봉사하는 모범운전자를 만난다면 아이처럼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