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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통행
도로 위 사람들
  • 세상을 시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요
    시 쓰는 환경미화원 금동건

    음식물 쓰레기 더미에서 시상을 떠올리고, 남들은 코를 움켜쥐는 악취도 향기롭다고 말하는 사람.
    환경미화원이자 시인인 금동건 씨 이야기다.
    그는 매일 긍정의 에너지로 도로 위를 달린다. 누구보다 안전하게!
    • 글. 김혜영   사진. 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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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인생의 터닝 포인트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는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금동건 씨는 20~30대를 병마와 싸우며 보냈다. 영양결핍에 폐결핵까지 겹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 그 사이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예쁜 딸 아이도 태어났지만 그의 몸은 제대로 된 일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러 직장을 전전했어요. 택시 운전도 하고 산불 관리인 일도 해봤고요. 닥치는 대로 누가 절 써주기만 한다면 가서 일한 거죠. 근데 몸이 안 따라주니 결국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고, 그만 두고… 그때는 정말 제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했더랬죠.”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에 지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금동건 씨를 원망하거나 타박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독려해준 것이다.
“환경미화원 일을 소개한 것도 아내예요. 한 번만 도전해보자는 말에 용기를 냈죠. 처음에는 새벽 3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까지 해야 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다독이는 아내의 응원에 하루하루 나가다보니 2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일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한 달을 채우고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겹지 않고, 무거운 통을 짊어지는 일도 힘들지가 않더란다. 이제야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하다보니 이제는 이 일이 너무 좋아서 하고 있다.
“누구는 돈 벌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하루라도 일을 쉬면 그리울 지경이라니까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 쓰레기를
    비워낸 자리에
    아름다운
    시를 채우다

쓰레기를 비운 자리에 채운 문장들

경북 안동 출신인 금동건 씨는 10살이 되던 해 큰 형을 따라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로웠던 그는 안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이 놀이가 되고 위로가 되던 시절을 지나 매일 일기를 쓰며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도 오늘 무슨 일을 했고, 학교에선 어땠는지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 일기와 다름없었죠. 일기도 처음에는 주저리주저리 길게 썼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압축해서 쓰게 되더라고요. 그게 시로 이어진 것 같아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시를 쓰기 시작했고, 일기처럼 매일 시를 쓰면서 작품이 쌓였다. 그렇게 첫 시집 <자갈치의 아침>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꽃비 내리던 날(2011)>, <詩를 품은 내 가슴(2018)>, <엄마의 젖무덤(2020)> 등을 출간했다. <詩를 품은 내 가슴>은 경남 김해시 올해의 책 중 시민작가 도서가 됐고 지난해에는 김해문화재단의 ‘김해 문화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몇 번의 방송 출연 덕분에 ‘시인이 된 청소부’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방송이 좋긴 좋더라고요. 많이들 알아봐 주세요. 초등학생들이 와서 사인 해달라고 한 적도 많고요. 그 전엔 냄새 난다고 인상 찌푸리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친근하게 다가와주시고 인사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시를 일기처럼 쓰니 금동건 씨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된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나는 행인의 얼굴 속에서, 차창 밖 풍경 속에서 그의 시가 완성되어 간다.
“운전을 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면 잠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메모를 합니다. 예전에 머릿속으로 시 한 편을 다 쓴 적이 있는데, 집에 와서 옮겨 적으려고 하니 머리가 새하얘지더라고요. 정말 통째로 잊어버린 거죠.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이제는 무조건 메모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안전이 우선이니, 항상 주차가 가능한 곳에 정차한 다음 펜을 잡습니다.”

지금처럼 변함없는 일상 지켜내고파

회사를 옮기며 금동건 씨의 일과에도 변화가 생겼다. 근무 시간이 변경되면서 아침 7시에 일어나 오후 1시에 출근할 때까지 작업실에서 시를 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오전에 작업한 시를 다듬거나 완성하는데 공을 들인다.
“출근 전 시를 쓰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저만의 작업실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시를 쓰다보면 머릿속도 맑아지고 일 하기 위한 적절한 워밍업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매일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소중한 까닭은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년 어느 날, 운전석에서 무심결에 차문에 팔을 짚었는데 문이 덜 닫혔던지 순식간에 문이 열리면서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머리로 떨어지면서 척추에도 손상이 가 이후 허리 수술만 세 번이나 해야 했다.
위험은 도로 위에도 있다. 새벽에 업무를 할 때에는 난폭운전을 하는 이륜자동차가 신호도 위반하고 차로를 넘나들며 쌩쌩 달려 부딪힐 뻔 한 경험도 여러 번이다. 금동건 씨가 운행하는 수거 차량은 5톤 트럭으로,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담기면 10톤이 넘는다. 무게가 무거운 만큼 제동이 자유롭지 않은 편. 운전을 할 때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트럭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물이나 사람에 빠르게 대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서행 운전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뭐든 서두르다보면 사고가 나는 것 같아요. 빨리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차근차근 하나씩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운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고 위험도 줄더라고요.”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사고와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해가는 경험들을 하며 무탈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는 금동건 씨. 앞으로 7년은 더 이 일을 하고 싶다며 그러려면 안전운전이 가장 먼저라고 말한다.
“7년 뒤면 제가 70살이 됩니다. 그때는 몸이 더 안 따라줘서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다치지 않고 목표한 바까지 환경미화원 생활을 이어가려면 늘 안전 운행하고, 안전 수칙을 잘 지켜야겠죠. 은퇴 이후에는 아마 시인으로서의 삶을 더 이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좀 더 여유롭게 시도 쓰고, 많은 분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요.”
처음부터 환경미화원이 천직이라 여긴 것은 아니지만 노력했고, 한 번도 쓰레기가 더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도 강한 사람. “나는 이 세상을 비우는 환경미화원이다 / 그러므로 거리엔 아침 햇살 가득 채워주는 시인이다”라는 그의 시집 <비움>의 마지막 구절이 시 쓰는 환경미화원 금동건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오늘도 거리의 더러움을 비워내고 마음 속 햇살을 따뜻하게 채워나가는 중이다.

“빨리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차근차근 하나씩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운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고 위험도 줄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