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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운행
도로 위 사람들
  • 여자라는 편견 깨고 싶어요!

    최유경 5톤 화물차 기사 어느 날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여성이 있다. 5톤 화물차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무거운 짐도 척척 나르는 최유경 씨다.
    KBS의 장수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소개된 그의 모습은 꽤나 믿음직스럽다.
    남편과 함께 4남매를 기르며 운전대를 잡은 그는 오늘도 다짐한다. 안전운전!
    • 글. 차지은   사진. 김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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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기 위해 잡은 운전대

최유경 씨가 화물차 트럭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건 4년 전 일이다. 화물차 운전을 하던 남편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새벽 5시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오후 4시, 6시가 돼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아무리 조수석에서 말을 걸어주고 먹을 걸 챙겨줘도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잖아요. 그 1, 2초가 정말 무서운 거거든요.”
자신이 운전하는 단 두 시간이라도 남편을 재우고 싶던, 졸음운전으로 자칫 큰 사고라도 날까 걱정하던 아내의 마음이었다. 마침 코로나19의 여파로 유경 씨가 일하던 수산시장 일이 줄어든 것도 맞아 떨어졌다. 시장이 한산한 평일이면 그는 남편과 함께 도로 위로 나선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시작했으니 당연히 안전을 제일 신경 쓸 수 밖에요. 평소 화물차 사고 뉴스라도 보면 마음이 덜컹해요. 제가 직접 운전을 해보니 고충을 더 알게 됐거든요. 화물차 운전을 하다보면 비포장도로나 도로 파임이 있는 구간도 자주 지나게 되니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유경 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시나 안전. 적재물을 고정시키는 끈도 삭기 전에 먼저 교체하고 운전 중에도 끈이 풀리지는 않을까 예의주시한다. “물건을 싣고 가다보면 차가 흔들리면서 자연스럽게 끈도 조금씩 느슨해져요. 중간에 차를 세워서 조이고 다시 출발하기도 하죠. 짐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모두의 실천이 안전을 지킨다

총 중량 3.5톤을 초과하는 화물차는 최고속도가 90km/h를 넘지 않도록 최고속도제한장치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속력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그럴 땐 엔진브레이크를 쓰면서 속도를 조절해요. 속도가 과하다 싶으면 잡으면서 천천히 내려가죠. 짐을 싣고 가는데 순간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서 과속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듯 안전에 철저한 최유경 씨에게도 위험한 순간들이 있다. 도로 위에서 난폭 운전자를 마주쳤을 때다.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발견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하다. 제동거리가 일반 승용차 보다 긴 화물차의 특성상 운전자가 대처를 빨리 한다 해도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
“방향지시등은 반드시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간혹 전조등을 켜지 않거나, 정비를 하지 않아 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는 차량이 있는데 도로 위에선 굉장히 중요한 신호라고 생각해요. 제가 운전을 해보니 모두가 안전운전을 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는 모든 운전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전방 주시와 안전거리 유지는 필수입니다!”

운전대 앞에 성별은 없다

유경 씨는 누구보다 ‘일 잘하는’ 프로다. 그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 커다란 대형 트럭을 몰며 도로를 달리는 그는 300kg이 넘는 화물을 직접 내리고 쌓는 일까지 거뜬히 해낸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소모가 있는 일이긴 해요. 하지만 일 때문에 힘든 것보다 ‘여자가’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좀 따가웠어요. 물론 희귀하니까 신기해서 그러셨던 걸 수도 있는데,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휴게소에 가면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서 내리는 일도 많아요.”
화물차를 몰게 된 지 어언 4년이 되었건만. 그에게는 아직도 신경 쓰이는 시선이다. 하지만 이내 유경 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들 ‘엄지척’을 세울 수밖에 없다.
“편견을 깨기 위해 더 열심히 했어요. 성격이 좀 그래요. 악으로 깡으로 하는 스타일이에요.”
화물을 싣고 내리는 유경 씨의 일도 원래는 기사의 몫이 아니다. ‘할 줄 안다’는 전제 하에 서비스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못하는 운송 기사들도 많다. 하지만 유경 씨에겐 배우면 그만인 일일 뿐이었다.
“일의 효율이 좋아지니까 배웠어요. 화물차 운전도, 상하차 하는 법도 남편이 알려줬죠. 처음엔 반대하던 남편도 제가 잘 따라가니까 점점 일을 시켜요(웃음).”
알아서 척척, 모든 잘 해내는 유경 씨지만 이를 바라보는 남편은 언제나 걱정뿐이다. 혹여나 사고가 날까, 잘 한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진 않을까 노심초사. 유경 씨는 그런 남편을 안심시키듯 말한다.
“남녀를 떠나서 운전은 사람의 성격을 닮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 여자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성별로 편견을 갖지 않길 바랍니다.” 그녀의 당찬 행보가 사회의 편견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남녀를 떠나서 운전은 사람의 성격을 닮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운전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

나를 지탱하는 힘, 가족

유경 씨의 하루는 새벽 3시면 시작된다. 가족과 함께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아이들 등교 준비까지 마치고 나면 어느덧 해가 떠올라 있다. 아침 여덟시 반이 되면 시럽을 가득 넣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자신의 차에 오른다. 한 잔은 남편 몫이다.
“커피가 정말 좋더라고요. 운전할 때 집중도 잘 되는 것 같고요. 아침엔 꼭 시럽을 넣어요. 정신이 번쩍 들게요.” 그렇게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면 오후 6시나 돼야 집으로 돌아오는 부부다. 바쁜 일상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유경 씨는 개의치 않는다.
“몸은 더 힘들어요. 바빠서 점심을 굶을 때도 많고요. 하지만 남편이랑 같이 하다보니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전화도 많이 하고, 서로 고충을 이해하니까 대화 소재도 많고요. 덕분에 사이도 더 애틋해진달까요?”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가족이다.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일하다 보니 부부를 찾는 곳도 더욱 많아졌다. 사고 한 번, 민원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부부 운전자가 몇이나 될까.
“운전하면서 희열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많이 늘었어! 옛날엔 무서워서 조마조마 했을 텐데 이젠 잘 나오네!’라며 칭찬해 주기도 하고요. 성취감이 있어요.” 고단한 일정을 소화 하면서도 유경 씨가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 역시 가족이다. 젊어서는 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노년에는 부부가 좋아하는 남해로 가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자는 것이 그들의 계획. 그러므로 유경씨 부부는 ‘고생’이 아닌 ‘희망’으로 가는 여정을 즐기는 중이다.